까만색 촌스러운 겉표지안에 누런 갱지가 차례대로 엮어져 있었다.
부천경찰서 안에 세련되지 않은 문짝위에 "면회자...' 뭐 이런게 써 있었는지 어쨌는지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 세련되지 않은 문을 열고 들어서니 볼것없는 책상에 볼것없다는 심드렁한 남자가
나에게 촌스러운 기록지를 내 놓았다.
주민등록 번호,이름,관계..이런걸 쓰는 공간에 난 잔뜩 심통이 나서 내 신분을 휘갈려 썼다.
남편의 죄명은 상습적인음주운전이였다.
그 죄인의 관계 처였기에 나도 같은 죄명을 뒤집어 쓴 듯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남편이 경찰서에 구속돼 있다는 전화를 받고 이틀뒤에 면회를 갔다.
친정어머니는 가서 얼굴을 보면 뭐하냐고 속상해서 억지를 부리셨지만
그래도 호적상 부부가 아닌가.
경찰서 뒤편 연회색 건물에 잿빛 철문이 열려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곳이 임시로 구속되어 있는 죄인들의 소굴이란 걸 알것같았다.
온 몸과 다리가 풀려서 그 문을 향해 걷다가 쭐덕 미끄러질뻔 했다.
그제 내린 빗물이 아직도 남아서 나를 놀리고 있다니...
약이올라서 뒤돌아 한번 더 빗물을 차다가 흙탕물만 발가락에 튕겨버렸다.
쫌쫌한 철장안에 낯익은 남편의 나타난건 몇분밖에 안걸렸다.
"미안해" 첫마디가 철장유리창 사이로 흐릿하게 들렸다.
"별짓을 다 해. 골고루군.."남편은 결혼해서 정말 별짓을 다 했다.
대 놓고 바람만 안피웠을뿐이다.
이렇게 대면하고 있는 남편과 나 사이는 뭔 악연인지 알 수가 없다.
" 아이들은 어떻게 하라고..." 이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남편도 할 말을 버리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남편은 그래도 살고 싶은지 자기네 집에도 연락하고 누구누구네 연락해서 꺼내달라고 했다.
난 죄값을 치루라고 냉정하게 말하고 철문을 뒤로 하고 나왔다.
남편을 보러 들어갈땐 안보이던 원두막이 뒤돌아오는 길 왼편으로 접어드니 바로 앞에 보였다.
편히 쉴 수 있는 의자와 자판기.
쥬스 캔을 들고 원두막 의자에 앉았다.
한 모금 마신 오렌지 쥬스가 더럽게 썼다.
이곳에 이런 자리를 마련한 뜻은 뒤범벅인 가슴을 가라앉히라는 뜻일거다.
다시금 가슴을 가라앉혀본다.
번번히 차단당한 내 결혼생활의 원인은 항상 남편이란 인간이라 생각하며 살았었다.
그러는 사이 난 조금씩 조금씩 남편이란 인간을 버리기로 하고 의젓하게 홀로 결혼의 길을 걸었다,
'남편 같은 건 없어도 돼. 나만 다치지 않으면 되는거야' 라고 하면서...
홀로인 결혼 생활을 잘 견디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살기도 했었다.
밤에 늦게까지 책 읽기 티비보기.
아침에 일어나 냉수 마시며 부엌창을 내려다보기,
아이들 보내고 모든걸 잊고 오전잠자기,
오후에 일터로 가서 손가락이 휘어지도록 일하기,
바쁘게 퇴근해 살림하기...
이런 삶은 소소한 일상으로 엮어져 있지만 나에겐 최선의 연구를 한거였다.
가정을 지키며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방법이였다.
그러다가 삼천포로 풍덩 빠지긴 했지만...
인공적인 경찰서 원두막 아래는 더운 바람만 신나게 불었다.
'나도 이제 씩씩하게 집으로 가야지 별수있나'
부천 도로가엔 접시꽃이 한창이였다.
일산으로 오는 길가엔 개망초꽃이 지천이였다.
남편은 구속되었어도 접시꽃은 접시만하게 피었다.
그 사람은 날 버렸어도 끈질기게 개망초꽃은 피어났다.
"피시식..."허탈한 비웃음이 나왔다.
지는꽃이 있으면 피는꽃이 있고,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죽은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사는게 세상이치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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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삶는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 고였습니다.
이 글 쓰다가 빨래 다 태워먹은 줄 알았습니다.
딸아이 속옷도 아들아이 런닝도 내 팬티도 삶는 빨래통에 있지만 남편 속옷은 없습니다.
남편은 지금 구치소에 있거든요.
구치소에서는 누가 빨래를 빨고, 빨래를 삶기는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