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시쯤이나 되었을까?
더듬 더듬 협탁에 있는 시계를 어림잡아 들어본다.
아직까지도 시계는 자고 있는게 분명하다.
이렇게 까지 시간이 가질 않다니...
창으로 어스름히 비쳐든 빛을 보고는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
용케 게으름을 알았는지 시계는 부산히 움직였나보다.
아침을 준비하고
대충 먹는둥 마는둥...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여기저기 한가지씩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거울앞에 앉았다.
생기없고 차갑던 얼굴에 발그리 윤기가 돌았다.
표정없던 눈빛엔 부드러움이 묻어났다.
지금 이 순간은...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을것만 같았다.
아직도 비는 내린다.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아이러니일까?...온갖 상념에 빠지게 했던
우울한 비였는데...
웃음이 나왔지만 그래도 난 바삐 움직였다.
"부르릉~~!"
차의 시동이 걸리고,
막힘없이 달리는 도로의 한적함에 기분이 더없이 좋았다.
이렇게...
나의 일상탈출은 성공했다.
"**발 **편 손님은 탑승수속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수속을 마치고,
자판기앞에서 난 천천히 커피 한잔을 빼어들었다.
워낙에 커피를 좋아하긴 하지만,
어디서나 언제나 내가 원하면 마실수 있는 자판기 커피는
부담없는 친구같아서 좋다.
탑승구를 지나
형식적인 물품검사를 끝내고 나서
인터넷서비스가 가능한 공항라운지 구석으로 갔다.
여기 저기서 들어온 메일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시계를 들여다보고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탑승구 근처에 잠시 앉아있었다.
.
.
.
거대한 솜덩어리였다.
손을 뻗어 한자락만 떼어와도
온 집안식구들의 겨울이불을 만들어주고도 남을것 같았다.
세상에 다시없는 포근함에 묻혀 온 심신을 뻗쳐대면
마음의 키도 훌쩍 커버릴것만 같았다.
기내에서 보이는 구름하늘은 그랬다.
.
.
.
몸이 노곤해지기 시작했다.
설쳐버린 잠의 유혹은 훨씬 강력했다.
기분좋게 그 유혹에 빠져들고 싶었다.
난 눈을 감았다.
이제...
내가 눈을 뜨면
사랑하는 그 사람이 내 앞에서
환하게 기분좋은 웃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