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자주빛이 선명한 포도를 씻으며
딸을 불러 보지만
아인 별로 내키지 않은 듯 꼼지락거린다.
포도 한 알을 삼키는 일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요하는지
그저 한 입 깨물어 입안에 툭 터뜨리면 될 일을,
그만큼 딸은 그 일도 잘 못한다....
포도 귀신이었던 어릴적,한 소쿠리 가득한 포도 송이를
꼭 대문 밖에 서서
야금야금 축을 내던 나...
동네 아이들은 시커먼 손으로 내가 의기양양하게 주는 포도 한알에
콧물 한 번 쑥 올리고 씨익 웃으며
얼마나 달고 달디 먹던지.....
앉지도 않고 문 밖에 종일 서서 동네 아이들과 집에 포도를
거진 바닥을 내고
엄마의 소리도 한 귀로 흘려 버리던 그 때의 그 포도
요즘 아무리 맛나고 볼품있어 보이는 포도를 보아도
그 시절의 너덜너덜한 그 맛만 하겠는가.
값도 만만찮은 거봉이라는 품종을 접하고 부터
그 단맛에 엄마는 한동안 좋아했었는데도
그 값에 언뜻 사지는 못하고
우연찮게 이 딸이 몇 송이라도 사드리면
냉장고에 아까워서 꼭꼭 싸두곤 했었다,
다음에 이 딸이랑 같이 먹을려고...
어렸을 적
유난스레 포도를 좋아하던 나에 비해
지금의 딸 아이는 겨우 몇 알만 먹고는 입을 닦는다.
그런 아이를 보노라면
내 자식인데도 밉상스럽고
손톱 밑에 포도의 과즙이
새까맣게 물이 들게 먹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다만 한 송이라도 제 에미 어릴 적처럼 맛나게
먹어주면 좋으련만,,,,,,
거봉의 큼지막한 알도 조금 있으면 과일 가게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포도의 계절이 돌아왔지만
식구들이 즐겨 먹는 과일이 아니기에
선뜻 나 먹자고 손이 가지 않는 걸 보니
울 엄마가 그립기만 하네.
같이 거봉이라도 실컨 먹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