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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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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스틱 짙게 바르고...


BY my꽃뜨락 2001-05-28



언젠가, 조수석에 앉아 멍청히 밖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남편은
말했었다.

여자가 가장 이뻐 보일 때는...
지리산이나 설악산 같은 명산을 숨가쁘게 오르는데, 바로
위에서 경쾌한 발걸음으로 명산을 품에 안고 내려오는 여
자, 그런 여자는 나이 불문하고 다 아름다워.

두번째는?
음~~~ 화사하니 곱게 화장한 모습에 립스틱도 선명한, 꼭 선그라스
멋지게 낀 비너스의 옆모습처럼... 그런 여성오너드라이버가 사이
드 미러를 통해 비칠 때, 정말 아름다워!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그 때, 나는 다소 알싸한 기분으로 내 몰골
을 남편 눈에 안띄게 살피지 않았나싶다.
나는 그때까지 그 흔한 '증' 하나 없는 그야말로 무면허 아줌마였으며
화장은커녕, 남편이 어디 가자하면 버스타는 것도 아닌데 하며 입은
채로 냉큼 튀어올라타던 다소 한심한 족속측에 끼었던 것이다.

어쨋거나 그 후, 나는 문득문득 남편의 그 언사가 떠올라 이빨새에 낀
찌꺼기모양 까칠거리는 마음으로 찜찜해하곤 했었다.
남편의 웬만한 조련질에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던 내가 자동차운전교습소
에 등록을 한 것은 순전히 마음놓고 술자리에 끼어보는게 소원이었던
남편이 감언이설로 나를 꼬드긴 탓이었다.

3년 전
필기시험에서 52점이라는 점수로 남편을 일단 경악시키고 재수 삼수 끝에
드디어 나는
난생처음 '증'을 가진, 대한민국 자랑스런 아줌마로 거듭나게 되었다.

남편도 놀래고 나도 놀랬고,
나 아는 사람들은 다 놀랠 놀짜로 일대 사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운동신경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늘낙지였던 터였다.

오래 전,
우리 사는 꼬라지가 너무 한심한지라 이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싶었던
남편 선배님이 짜낸 자력갱생 프로그램 중에
나를 양재학원에 보내 재단사로 만들겠다는 시도가 있었다.

매달 11만원이라는 거금을 수강료로 내고 6개월을 다녔는데
학원 선생님이 '아줌마같은 사람은 보다 처음 봤다고...'
웬만하면 그만 두지 하는 싸인을 보낼 정도로 나는
그 드르르륵~~~~~ 달리는 전동미싱에 적응을 못해 쩔쩔매었다.

자전거도 배우기를 시도하다 엠한 무릎팍만 까뜨리고 그만 두었지...
하여튼 재주라고는 눈 씻고 ?아봐도 잠 잘자는 것 밖에는
없는 실정이었으니
국가면허증을 번듯하게 거머쥔 내게 모든 사람들이 찬탄을
금치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백미러에 비친 입술도 아름다운 여자...
이 화두가 늘 머리 속에 떠나지 않았던 나는
운전 초창기에는 나도 그리 하리라, 야무진 결심을 하고 우선
썬그라스부터 맞췄다.

'지랄도 해야 는다고' 도대체 화장은 내 생리에 맞질 않았다.
양 쪽 눈썹을 균형있게...
입술 선도 삐틀어지지 않게... 이런 행위는 가히 예술성을
요구하는 수준이었다.
더구나 공들여 한 화장을 깨끗하게 지우는 것 역시, 지극히
범상한 내 수준에서는 감당하기가 수월찮은 순서였다.
썬그라스마저, 세상이 온통 시프르딩딩하게 보이는게 너무
갑갑시러워서 벗어팽게쳤다.

다시 나로 돌아왔다.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옆 차, 운전자가 보거나 말거나 운전석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최진희 CD 쎄게 틀어놓고 흥겹게 따라부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날 밤 황홀한 그 순간
난 잊을 수가 없어요...

쥑인다~~ 노래에 취해 차흐름이 둔해져도 전혀 답답하지 않는데
좌회전이 먼저 가고 싶은지 안달을 한다.
미소까지 머금으며 손짓을 해줬다.
그 차 운전자가 활짝 웃으며 한 손을 슬쩍 들어 답례를 해준다.

그 웃음이 너무 다정해 얼떨결에 백미러로 내 얼굴을 살펴봤다.
뭐야? 립스틱도 안칠했는데...
참고로, 고백하건데
내 사주팔자에 도화살도 있다카네요...

꽃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