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에서 공부하던 큰 딸이 방학이라 집에 돌아와 제일 먹고싶은 게
꼬리곰탕이라 하여 아내가 한 솥을 끓였다. 꼬리를 듬뿍 넣고.
압력솥에 고기가 흐믈흐믈해질 때 까지 푹 고아, 고기는 초간장에
찍어 먹고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꼬리곰탕은 우리식구 모두
좋아하는 음식중의 하나인데, 이것을 먹을 때마다 나는 이민초기의
일이 생각난다.
이곳 L.A.에 요즘엔 군데군데 한국 "슈퍼"도 있고 미국 "슈퍼"에서 마저
소꼬리를 취급하는데, 우리가 이민왔던 70 년대 초엔 그것을 먹는 사람이
없어 소꼬리는 개나 고양이의 사료로 쓰이고 있었다.
이민온 지 반 년쯤 되는 70 년대 초 어느날, 우리보다 1 년 먼저 이민
오신 어머니 친구분이 놀러오셨다가 저녁을 같이 드셨는데, 저녁식탁의
얘기는 당연히 두고 온 고향산천, 친구, 그리고 먹고싶은 음식에 관한
것이었다.
음식에 대해 얘기하시다가 어머니가 "꼬리곰탕"을 그리워하시자,
(L.A.에 한국식당이 없을 때 였음. 한국교민 수 약 2 만이던 1973 년)
그 친구분 께서 소꼬리 파는 곳을 아신다며 다음 날 당장 사러가자
하셨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저녁에 우리는 그렇게 먹고싶던 꼬리곰탕을 실컷
먹을수 있었다.
**********
새벽 일찍 그 친구분이 차를 몰고와 어머니와 두분이 L.A. 다운타운에
있는 고기 도매상으로 향하셨다. 차를 주차시키고 한참을 걸어
어느 고깃간 앞에 도착하셔서 그 친구분이 점원을 찾으셨는데.....
' 헬로 야, 헬로 야 !'
어머니 께서 깜짝 놀라셨단다. " 헬로 야 ? "
그러자 한 미국 아저씨가 웃으며 다가와,
'Yes, may I help you ?'
'음~~ 노 에릭 ?'
'No. Eric is sick today.'
친구분 께서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더란다.
(그 녀석은 몇 달 동안 익숙해져서 대강 알아채고 고기 종류들을 가져
나온다던데, 영어도 거의 못하시는 사십대 초반의 한국 아줌마 두분이
어떻게 하나 ?)
'What can I help you with ?' (무얼 도와드리까요 ?)
그 아저씨의 재촉을 받곤 이북 출신인 그 친구분의 진가 (?)가
발휘되었단다.
두 검지 손가락을 머리 위에 뿔모양으로 세우신 뒤 하신 말씀,
'유 노 (You know ?) 음 메~~, 음 메~~ ?'
고개를 갸우뚱하던 미국 아저씨, 곧 알아듣곤,
'You mean cow ? Are you looking for beef ?' (소고기 찾으세요 ?)
'카우, 예스 ! 비프, 노 !'
그리곤 어머니한테 꼬리를 영어로 뭐라하는지 물으셨는데, 갑자기
"tail"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나시더란다.
그러자 그 친구분, 허리를 반쯤 굽히시고,
주먹 쥔 오른손을 엉덩이 위에 대고 검지를 세우시곤
"엉덩이 씰룩씰룩", "검지 손가락 뱅글뱅글",
그러다가 그 뱅글뱅글 돌리던 손가락을 번쩍 드시곤,
'디스, 플리즈 !'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던 고깃간 아저씨가 들고 나온건,
틀림없는 소꼬리(oxtail)였단다.
**********
저녁 드시면서, 어머니는 그 손가락 움직임이 "돼지꼬리를 더 닮았더라"
하셔서 무척 웃었는데, 그 사건이 미국생활하며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내게 큰 힘이 되곤한다.
" 별거 아닌 게야. 나도 할수 있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