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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나(5)


BY 들꽃편지 2000-11-15

한번은 이런일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친구 둘이 우리집에 오겠다는겁니다.
중학교 때까지 친구를 데리고 왔었는데,
고등학생이 되어선 친구를 우리집에 데리고 온 적이 없었습니다
사춘기 였겠지요.
가난이 창피하고 싫어지기 시작 할 시기였으니까요.
둘이서 작정을 하고 따라오는데 말릴수가 없었습니다.
집근처까지 왔지만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뺑뺑뺑 골목을 돌고 또 돌았더니
친구들이 핵핵핵 지쳐 화를내며 가버렸습니다.
말은 없고,
낙서만 하고,
자존심만 남아가지고,
몇 안되는 친구를 뺑뺑이만 치게 만들고...
미안하다 친구들아.

방학때면 난 외갓집으로 갔었습니다.
고향엔 날 반겨 줄 친구는 없어도,
두발로 서서 반기는 똥개가 있고,
외할머니가 나 먹으라고 심어 논 옥수수가 있고,
대문밖 키다리 미루나무가 있는 고향이 무조건 좋았습니다.
여름엔 냇가에서 깜둥이가 되도록 헤엄을 치고,
겨울엔 외할머니 옆에서 부지깽이로 불 때는 것이
엄청 재미있었습니다.

풀섶에 이슬맺힌 들꽃.
알싸한 아침 공기 냄새.
뚝 따서 씻지도 않고 먹던 오이.
화롯불에 풋고추 넣고 빠글빠글 끊던 된장 찌게.
다음엔 고향얘기만 모아서 써야겠습니다.

큰 동생은 공부를 잘하는 수재였고,
막내동생은 착했지만 고집이 나면 아무도 못말리는
황소고집이였습니다. 엄마랑 제일 많이 떨어져 살아서
그런것 같아요.
나는 문학을 꿈꾸는 소녀였습니다.
중학교때까진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친척들이 그랬습니다.
우리집 형편에 여자가 고등학교는 무슨 고등학교냐고..
어머니 생각은 아니였습니다.
가난하니까 교육은 시킬때까지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래서 난 대학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도 중간에 그만 다니게 될지도 모르는데
대학은 무슨 대학.
미대 간다고 미술 공부를 하는 얘들이 부러웠고,
글 쓰는 것이 좋아 국문과에 가고도 싶었습니다.

지금 난 한복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하고 있고,
여기에 글을 올리고 있으니,
아주 동떨어진 생활은 아닌데...그냥 아쉽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