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과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공부가 점점 힘들어져가고
주위에 가끔 '중도포기'하는 친구들이 생기면서,몸과 마음이 조금씩
지쳐갔다. 공부시간에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도서관에 가더라도
별생각 없이 그저 멍한 상태로 앉아있다 나오곤했다.
겨울비가 몹시도 내리던 1월의 어느날, 도서관을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쏟아지는 빗속에서 우산을 쓴 채, 진한 포옹을 하고있는
한쌍의 미국학생이 보였다. 마치, 그림 속의 한장면... 영화 속의
'클라이맥스'인듯한 '뭉클한'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는데,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아! 나도 저런 게...필요한 거 아닐까?"
집에 가서도 내내 그 생각만 떠올랐다. 단조로운 생활속에 '신선한'(?)
생각 때문이었는지, 밤잠을 설치면서까지 '짝'을 찾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동안 데이트했던 몇몇 여학생들을 떠올렸다.
영화를 같이 봤던 친구...
바닷가로 드라이브를 갔던 친구...
학기말 댄스파티에서 파트너했던 친구.....
그러나 성격탓이었을까? 그들의 단점이 장점보다 더 크게 보이고,
그리고 전 편에서 언급했듯이 '미국 물'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별 뾰족한 수가 없자, 생각이 한단계 뛰어올랐다. "그럼, 결혼은 어떨까?"
가능성있는 상대로는 자연스레 조국을 떠나기 전에 알았던 여학생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범위는 근 4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던 친구들로
제한될 수 밖에 없었다.
다정한 글과 예쁜 글씨로 외로움을 달래주던 주아...(편지 끊긴지 1년)
일기장을 주고 온 선이...(편지체질이 아닌 그녀의 무심함)
그리고 꾸준히 편지를 보내주는 성격이 부드럽고 인상이 좋은 순이...
(결국 남은 유일한 선택. 후후)
순이에 대해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그동안 보내준 편지들도 다시 읽고...
확신이 생겼다. 이 여자라면 일생을 같이 보낼 수 있는 상대라는.
그리고 차분한 마음으로 공부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중대사를 나 혼자만의 뜻으로 밀고 나갈 수는 없는 법!
게다가, 부모님 슬하에서 공부도 아직 안 끝낸 상태에서...
며칠간 부모님의 눈치를 살피다가, 두분의 기분이 좋아뵈는 어느날 저녁,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저, 공부가 자꾸 힘들어져 갑니다. 심적으로도 방황하고 있구요...
아직 이른 나이지만, 결혼을 해서 생활이 안정되면 제 앞길이 수월할 것
같습니다."
"아니! 공부하는 학생이 무슨 쓸데없는 얘기냐?" 라는 꾸지람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디 생각하는 처자라도 있느냐?"고 아버지가 물으셨다.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계셨다 했다. 하지만 뾰족한 별다른 수가 없어서,
그저 큰 일 없이 넘어가 대학졸업이나 제대로 했으면...하고 바라고 계셨는데,
내 나름대로 방안을 제시하니, 한번 생각해보자 하셨다.
순이에 대한 내 생각을 자세히 들으신 뒤, 흡족하셨는지, 두분이 더 적극적으로
변하셨다. 게다가 순이의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와 고교 동기동창이시라,
순이네 집에 대한 믿음도 꽤 도움이 됐다.
3월에 어머니께서 한국으로 나가 순이를 만나보시고 만족스럽다 하셨고...
나는 나대로 열심히 순이에게 편지를 띄워 '꼬드기고'.....
순이 부모님께서는 아무 반응이 없으셨는데, 3학년이 끝난 여름방학에
순이를 만나 직접 부딪혀보기로 하고, 장마가 끝나가던 8월 초에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이 잘 되면 약혼이라도 하고 오고, 인연이 아니다 싶으면, 오랫만에
친구들 만나 푹 쉬고 오너라."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귓등으로 흘린 채...
4년 반 만에 반갑게 만난 순이는 미국에서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듯
싶었는데,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의사 앞에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특히,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는데, 눈에 넣어도 안 아플만큼 소중한 큰 딸을
먼 데로 보내고 사실 자신이 없으시다 했단다. 게다가, 미국출장을 여러번
갔다가 보신 교포들의 이민생활이 부정적으로 보였단다.
힘든 싸움이 시작되었다.
나를 만나면 내 편인듯 했던 순이가, 아버지 얘기를 듣곤 주저앉기를 여러번...
나는 나대로 포기했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부모님을 찾아가 허락을 빌고...
순이 아버지의 사무실로 찾아가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하지만, 좋은 조건의 '사'자 달린 신랑후보들이 많은데, 아직 대학졸업도
안 한, 먼 곳에 있는 '애송이'에게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키운 딸을
주실 수 없다고 완강하게 버티셨다.
그러기를 거의 5주...
미국으로 돌아오기 사흘 전,
순이 동생들의 '강력한 항의'에 아버지께서 백기를 드셨다.
'선'을 통해 경제적 사회적 조건을 따져보고 결혼하는 것보다,
서로서로 좋아해서 하는 '연애결혼'을 자기들은 적극 추천한다고.....
(이쁜 동생들...후후)
약혼만 하겠다던 계획은, 마지못해 허락하신 마음이 바뀔까 걱정하신
순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순식간에 결혼식으로 바뀌고,
총각으로 고국을 방문했던 나는, 7주 만에 유부남이 되어
L.A.로 돌아왔다.
두달 후면 결혼 25주년...
큰 딸이 대학을 졸업한 지금, 아직 상대는 없지만,
그때 장인 어른의 착잡했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될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