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흑인 여성이 예수 역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48

교단일기--33편 졸업18년 후


BY shinjak 2002-07-25

장마로 우산이 필요없을 지경이다.
세상은 온통 물전쟁이다.뉴스에서도 물을 퍼내고
수재의연금 접주중이라는 자막이 심심치않게 뜬다.

방학을 하여 집에서 헝크러진 머리에 푸시시한 얼굴로
집안을 왔다리갔다리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선생님 ㅇㅇ학교졸업생 ㅇㅇ입니다.오늘 이른 저녁 7시에
대학로 ㅇㅇ에서 6학년 7반 친구들 모이기로 했습니다.
선생님 꼭 참석하셔야겠습니다. 일방적인 통보에 웃음이 피식.

전화가 끊어지고 온종일 머리속에서 맴도는 그 아이들
학교가 옛날 임금님이 거처하는 궁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옛날에 말하는 양반댁이 많은 동네라서인지
불문곡지하고 18년 전 그 아이들은 너무 역동적이고
예의밝고 아이들다운 재미있는 학급이었다.

다행히도 학교가 농악시범학교라서 아이들이 북치고 장구치고
꽹과리치면서 스트레스 푸는데 기막히게 좋은 연구학교였다.

나는 우리 반들을 동원하여 오후에 남아 운동장에서 농악연습을 했다.
해금까지 춤사위까지 상모를 돌려가며 온 운동장을 그들의 정열을
발산하는 곳으로 매일매일 뛰고 땀을 흘리며 봄에서 가을입구까지.

가을 발표를 하는데,근사한 농악시범행사를 치루고 나니 아이들은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을 했다.
거대한 추억을 남기고 졸업을 하게 되었다.

6년의 시간이 훌쩍 뛰어넘어 어느 겨울방학날 전화가 온다.
선생님 저같은 놈이 서울대학에 합격했습니다.국악해금과에
축하해 주십시오.선생님 감사합니다. 합격의 영광을 받자마자
선생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 말속에 머리를 스치는 그 친구의
학교 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노래를 좋아해 심심하면 노래를 시켰다.놀이에서 주도적인 일을 했다.
오락부를 시켜 자기 재주를 펴 분위기 좋은 학급을 만들면서 신나는
학교생활을 보내게 된 것이다.

세월이 흘러 그들은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다.

30대 후반의 젊은 여선생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들은 궁금하리라.
땀이 많은 나는 좋은 옷을 입고 갈 수가 없다.시원한 옷을 입으면
체통이 서지않고,비는 주룩주룩 와서 구질구질하고 도대체 갈 맘이
생기지않는다. 자존심일까? 자신감이 없어진 걸까?

이왕 약속을 한 마당에 간단히 거울을 보고 지하철을 탔는데,
동대문역이 물로 잠길동 해서 다시 버스를 타고 힘들게 돌고돌아
대학로의 코코스인가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는 집으로 올라갔다.
근사한 청년들과 숙녀들이 20여 명이 일제히 일어선다.

모두가 나보다 10 CM 이상 큰 키에 멋진 선남 선녀들이
아니 이들이 나에게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란 말인가.
감격이다.앉아서 소개를 받는데,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그 개구쟁이의 모습이 그대로 얼굴에 번진다.

선생님은 하나도 변하지않으셨네요.무슨 비결이라도...
나를 기분좋게 하는 방법까지 알고.음 인간관계도 잘 배웠네.

폭소를 터뜨리며 옛날을 추억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일어선다.
아름다운 꽃다발을 안기고 일제히 서서 박수를 보내며 인사를 하는
그들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운 모습으로 찬사를 보낸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뿌듯한 삶의 희열이 나를 엄습한다.
교사는 좋은 직업이구나. 마음 상하는 때가 더 많지만,
그러한 시기를 지나면 사람다운 사람들이 되어 만나니까.

유달리 까불기만하고 순발력있는 개구쟁이 친구는 다섯개나 되는
호프집 사장이란다.

수학하면 아무도 못 따라갔던 친구는 ㅇㅇ연구원 박사로
결혼 사진까지 건네준다.

우리 반의 도덕선생이었던 친구는 목사님이란다.

점심 때마다 도시락에 콩나물만 싸오던 친구는 키가 가장 크다.
190 CM 가까이 된다니, 그 할머니의 콩나물무침으로 나랑 밥을 먹은
추억으로 자신감이 생겼다는 소심한 친구.

꼼꼼하고 틀림없는 학교생활을 했던 친구는 공무원이란다.

병아리 의사, 편집인,은행원, 교사,프로그래머, 디자이너,
사업가, 고급장교, 한결같이 빵빵한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제자들.
고마운 마음이 들고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그들이 말했던 나의 행동과 말이 다행이도 상처가 되지않고
삶의 지표가 되었다는 말에 더욱 고마움을 느끼며
앞으로 나의 교직에서는 더욱 제자들의 등대 역할을 해야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비오는 날 갑자기 생각나는 추억을 더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