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비만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27

장마


BY 조롱박 2002-07-17

후두둑,후두둑

키큰 푸라타너스에 빗물이 돋으면

처마에서 떨어진 빗물은

추녀아래 동그라미를 수없이 그리고

어디선가 기어나온 지렁이 한마리

꿈틀거리며 사선으로 기어다니던 그 여름

바쁜 일꾼들의 손 길 이 멈춘 텅 빈 들녘엔

벼잎 과 올콩 잎 과 웃자란 풀들이

수런수런 들녘을 일깨울때쯤

학교갈 채비를 마치고 검은 지우산을 들고

논둑길을 나서면

한없이 미끄럽던 논길을 한발짝 ,한발짝,

몸사리며 걸어가도 꼭 한 애 가 진흙구덩이에

미끄덩 넘어지곤 하던 어린시절

옷갈아 입을 틈도 없이 교문을 들어서면

질척이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에 다다르면 옷은 벌써 꿉꿉해진다

그나마 우산이라도 받쳐서 온 애들이야

꿉꿉한 정도지만 우산도 없이 얇은 비닐하나

둘러쓰고 온 친구들은 아예 온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곤 했던 아득한 그 여름은

수업이 끝날때까지 시큼하고 텁텁한 공기가

교실에 뱅뱅 맴돌곤 했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운동장엔

미끄럼틀,그네,시이소오,철봉,도 비 에 젖어있고

화단에 피어난 채송화,나팔꽃,맨드라미,봉숭아,해바라기, 도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모습은 정물 같았다

내 를 건너야 하는 친구들은 장마철이면

온전히 6교시 수업을 다 할수 없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서너시간 지나면 교무실에서 급사가 하얀 백지를 들고

교실 앞문을 두드리면 담임선생님께서

앞문을 열고 백지를 펼쳐보시다가

냇가를 건너가야 하는 친구들을 호명하시며

지금 책보따리를 싸서 빨리 가라고 하셨다

다리가 떠내려가기전에 집으로 보내는 것인데

지금 처럼 방송시설이 없었던 때라

마을 이장이 다녀가면 교장실에서 교무실로 지시가 하달되고

그 지시가 급사로 통해 각 교실로 전달되기도 했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우린 수업도중에 책보따리를 싸서

나가는 친구들이 어째 그렇게도 부럽던지

냇가는 커녕 작은 도랑이 고작인 동네에 살았고

학교 등,하교,길은 수많은 논둑길과 함께

차 가 다니는 큰 한길도 있었으므로

우리가 큰 비로 인해서 도중에 집에 갈 일은

없었건만 늘 그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장마철이면

냇가를 건너야 하는 친구들도 그랬지만

산을 넘어야 하는 친구들도 더러는 빨리 집에 가기도 했고

특히 가을철 운동회 연습을 할땐

산을 넘어가야 하는 친구들은 늘 해가 서너발 길이가 남아있을때

보내주고 해서

해가 한발길이 남을때까지 하나,두울,무용연습을 해야 했던 우리는

그땐 또 산넘어가야 하는 친구들을 부러워 했다

장마속에서 대청소라도 하는 날은

학교 운동장 옆 연못은 일대 난장판이 벌어지곤 했다

제법 길다랗게 넓은 연못은

소사아저씨께서 봄 내내 땅을 파서 만들었는데

펌프물을 퍼올려 물을 채우고 연못가운데

우리나라 지도를 큰 바윗돌로 만들어 놓고

가장자리 물 위에 처음엔 붕어도 살고 했지만

물이 땅에서 솟는 게 아니고 학교 우물물을

펌프로 퍼 올려 부어서 채워야 하는 번거로움때문에

늘 연못은 땅이 보일만큼 제구실을 못하고

?p마리 있던 붕어마져 죽고 없었다

장마가 지면 연못은 물이 차서

개구장이들이 놀기에 안성맞춤이었고

쉬는 시간이면 늘 신발을 털기위해

현관에 둔 나무판자를 끌고 나와

남학생들이 둥둥 띄워놓고 뱃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지기도 하고

주위에 빙 둘러선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라고 함성을 지르고 했던 연못은

장마철 내내 남학생들의 좋은 놀이터가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가는 시간은

상급반에 있는 언니나 오빠들이

동생이 있는 학급에 찾아가서 기다리거나

동생이 상급반 앞에서 기다리거나 하는

모습은 자연스런 풍경이었다

우산이 모자라니 한 우산 밑에 세명,아니면 두명이

같이 쓰고 가야 하는 시절이야기이니

상급반 현관앞은 늘 애들이 북적 북적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다

장화가 귀했으니 발 은 젖어 불어있기 일쑤고

그래도 타박 타박 질척이는 물고랑을 용케 피해

집에 들어오면

군불을 지펴 따뜻해진 방 기운에

저녁도 잊고 잠을 자곤 했던 장마철

따뜻해진 방안에 빨래감이

깃발처럼 널려 있던 사랑채

토란잎사귀를 쓰고 동네를 휘휘 젓고 다니던

어린시절 동화같은 얘기

달팽이도 많고 청개구리도 많던 여름 장마

올해도

장마철은 왔는데

세상은 장마가 와도 늘 상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뿐

빠른 세월만큼이나 우리 의,식,주,도 많이 바뀌었으니

그시절은 그저 추억이라고 이름붙여 간직해야할 풍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