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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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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을 주고 받는 남자들.


BY 雪里 2002-07-17


아침에
스쿠터를 타고 나올때마다 느껴지는 기분은
하루를 상쾌하게 열게 한다.

녹색물을 뚝뚝 흘리며 서있는 나무들이 빽빽해서
가끔은 음침이란 단어를 생각케하는,
공산성의 모퉁이를 옆으로 누운려는듯 폼나게 돌면서
폐부 깊숙히 다른 느낌의 공기를 마신다.

오늘 하루동안
또 나를 통째로 가둬둘
작은 시멘트 벽속에 문을 밀치고 들어서니
밤새 같혀있던 공기가 후끈하게
나보다 먼저 나가려고 문쪽으로 몰려온다.

열어놓을 문이라고는 내가 들어온곳 뿐이니
내가 밀려 나가야지.

긴걸레를 물통에 넣어 두번쯤 들었다 놓는데
울리는 전화벨이 다급히도 부른다.

"네~ 여보세요~! 어? 아침 일찍 왠 일예요 ?"

수화기속의 남자는 잘도 알아 듣는다며
가게 문이 열렸는지 확인 하는거라한다.

걸레를 거꾸로 벽에 기대놓고
물을 아스팔트 위로 넓게 버리고....

손전화를 겨우 접어 주머니에 넣었을만한 시간인데
하얀 트럭을 가게 앞에 세우고 들어서는
시커멓게 그을린 수화기속에 있던 그 남자.
손에다 커다란 알 두개를 들고 들어선다.

"또 삶았어요? 아까워라, 깨이지 그래요, 모아서."

"영겸마 먹으라고 가져 온건디, 커피 시킬테니 먹어유."

나를 생각해가며 챙겨온 거.
그것도 귀하디 귀한 공작 알 두개.

"하나씩 나눠 먹어요. "

내 주먹만한 크기의 공작새알을 탁자에 탁탁 쳐서
무슨알 이냐고 의아해하는 배달아가씨를 반 나눠 주고
소금을 얹어 뿌려 먹으면서도,
활짝편 공작의 우아한 모습이 자꾸 생각나서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얼마만큼, 어떤 성분이 좋은지는 모르지만
몸에 좋다며 일부러 가져다주는 마음이 고마운데
보는앞에서 먹는 모습까지 보여 주고 싶은데,
입안에서 빙빙도는 걸 삼키느라
또 드는 커피잔.

배달되어온 커피향이 오늘따라 더 좋다.

하우스 농사를 지을때는 채소를,
닭을 키우던 지난해엔 살아 있는닭을.

엊그젠 애완강아지를 줄테니 키우라는데
본인몸이나 잘 챙기라며 일 만드는거라고
그이가 질색을 했다.

점심시간엔 같이 먹자며 점심 시켜주는 남자,
부부 외식땐 가끔 나를 데려가서
회를 좋아하는 내게 배불리 먹게하는 남자,
소문난 돼지갈비집에 차태워서 데리고 가서는
실컷 먹으라며 구운 갈비 내게 건네 주는 남자,
백숙을 먹으러 가자고 시간 만들라며
벌써전부터 말하는 남자...

남자들하고만 친한 이여자는
가끔씩 내가 여자인걸 잊다가,
그네들이 남자인것도 잊는다.

정이란 주고 받는것.

내가 주는것보다 몇배로 되돌려 받는것 같아
좀은 미안하면서도 가게 손님으로 만난 그네들이
가게 그만두고 들어 앉으면
아마도 보고 싶을거란 생각도 든다.

오래 알고 지낸터라
그들 가정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알고 있고,
가끔은 속풀이 상대도 되어 주면서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데,

내가 특별히 말주변이 좋은것도 아니면서도
그들과 잘 지낼 수 있는걸 가만히 생각하면
진심이 통한것 이라 생각한다.

겉과 속이 멍청하리만치 같은 내 성격이,
아니 그들이 표현하는 대로라면
말수없고 주변없는 그이보단
잘 웃어주는 내 성격이 편해서 인지도 모르지.

커피 보따리를 든 아가씨가
또 웃으며 들어선다.

굵은 팔뚝이
늘 팔뚝 굵다고 자랑(?)하는
부산사는 꽁뜨방 아줌마 생각을 나게 한다.

"뭐하는겨, 영겸마! 그놈의 컴퓨터 고장도 안나나?
영규엄마 그앞에 앉지좀 못허게.
빨리 커피 마셔유~!"

두번째잔의 커피를
팔뚝 굵은 아가씨가 내게 건네주며 웃는데,
연한 미소가 그녀를 한결 날씬하게 해주고 있다.

안에서 내다보는 밖의 햇볕이
오늘도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