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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76

늙는다는 것...


BY my꽃뜨락 2001-05-18



일요일, 화분의 물주기와 대청소를 마치고 상쾌한 기분
으로 샤워를 했습니다. 모처럼 거울 앞에 서서 빗질을
한 뒤 내 얼굴을 마치 오래 전에 만났던 친구 얼굴 살
피듯 곰곰히 들여다 보자니 예전에 눈에 띄지 않았던
잔주름살이 촘촘히 퍼져 있더군요.

나도 많이 늙었네...혼잣소리로 중얼거리며 화장품을
?았습니다. 게으름과 무관심으로 스킨, 로숀 하나 제
대로 챙겨 바르지 않았던 얼굴이니 세월의 상채기를 무
슨 수로 비껴갈 수 있겠습니까? 맘먹고 기초화장이라도
하려 했더니 스킨, 로숀이 모두 떨어져 빈병만 나뒹굴
고 있었습니다.

화장품이라면 그게 그거지, 뭐 별 거 있으랴 싶어 제일
싼 것, 예컨데 식물나라나 백화점 기획상품 코너에 만
원도 안되는 것만 상표도 확인 않고 사썼는데 그럴 일
이 아니라는 것을 지난 모임에서 들었습니다.

가끔 모임에서 나이치고는 정말 어려 보인다고 칭찬을
몇 번 들었었는데 한 후배가 언니 잔주름이 정말 많아
늙어 보이네. 얼굴에 신경 좀 써! 하는 충고를 들었습
니다. 그러면서 화장품도 나이에 맞게 기능성인가 뭔
가 하는 비싼 것을 써야 거칠고 메마른 피부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비싼 것은 얼마쯤 하는데? 하며 물었더니 보통 한 종
류에 5,6만원은 보통이고 눈가 잔주름 피는 화장품은
10만원이 넘는답디다. 세상에, 나는 어마어마한 화장
품값에 기암을 할 정도였습니다. 하기사 몇달 전, 건
강식품과 화장품 취급 다단계 회사에 들어간 선배가
권하는 화장품을 가격과 상관없이 도와주는 측면에서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 두가지에 무려 십만원이 넘는
거금을 주고 산 적이 있습니다만.

보통의 주부들이 평소에 이렇게 값비싼 화장품을 바
른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가격과
품질이 비싼 값을 하느라 피부에 도움이 크다는 말에
난 왜 이리 최소한의 비용도 나를 위해 들이지 않고
살았나 다소 한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덧붙
여 더 쓸쓸해진 것은 늙었다는 소리를 들어선지도 모
르겠습니다.

눈가는 그런 대로 괜찮은데 주름의 주범은 바로 입가
였습니다. 입술 주변이 노인네 입가처럼 조글조글 잔
주름이 펴져 있어 솔찮이 나이 먹은 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더군요. 안되겠네 하며 정말로 화장품을
좋은 것으로 사써야겠구나 작심을 하였습니다.

하기사 속절없이 주름진 얼굴, 화장품으로 가리운들
얼마나 나아 보이겠냐만은 그래도 가는 세월이 너무
서러워 이렇게라도 덧칠을 해 위로 받아야 하지 않
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가끔 혼자 차를 끌고 나갈
때면, 연푸른 녹색의 산천이 너무 아름다워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그 속에서 사랑을,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치밀 때가 있습니다.

이 나이에, 옛날 같으면 사위, 며느리 볼 나이에 무
슨 주책스런 바람긴가 민망해 지기도 하지만 아무도
눈치 못채는 마음 속의 바램이 죄될리 있겠습니까?
편안한 연륜에 힘입어 보기만 해도 매력적이고 멋진
중년남성에게만 사랑이 있으라는 법은 없지만, 나처
럼 곱게 늙은 외모도, 품위있는 언행도, 아무 것도
없는 초라한 아줌마가 사랑은 뭐 말라비틀어진, 가
당키나 한 얘기겠습니까만...

그래도 오늘은 정말 외로운 날이군요. 오늘같은 날
은, 하늘이 허락하기만 한다면 그 누구라도 뜨겁게
뜨겁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히히, 울 남편 알면 시
껍하겄네. 마누라 사고칠까봐...빈 가슴을 돈 코사
크 합창단의 장중한 목소리, 러시아 민요로 채우고
있습니다. 저녁 종소리, 스텐카라친, 귀에 익은 러
시아 민요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마음이 한결 가라
앉았습니다. 휴, 이제 됐다!!!

꽃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