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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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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나(3)


BY 들꽃편지 2000-11-14

어머니와 나의 고향 강원도.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인 아늑한 산골 마을.
산고개 넘어 두번째집이 외갓집이면서 어머니와 내가
태어난 곳입니다.
동네 가운데쯤 몇백년이나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고.
맑은 계곡물이 산그늘밑으로 굽이쳐 흐르던 아름다운 곳.

외갓집 바로 옆이 사과나무만 있는 과수원이였는데,
봄이면 하얀꽃이 눈송이처럼 날렸고,
여름이면 사과가 뎅글뎅글 초록으로 맺혀있고,
가을에 한쪽볼이 빨갛게 익어 가던 사과.
냇가로 가려면 여러길이 있었지만
전 항상 사과나무가 있는 오솔길로만 다녔습니다.

초등학교때 내가 졸업한 곳은 서울이였지만
평균적으로 일년에 한두번씩은 전학을 다녔기 때문에
나의 모교는 어디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답니다.
그래도 제일 많이 오래 다닌곳이 고향에 있는 초등학교지요.
전학을 7~8번 정도 했을까?
같은 학교를 두번씩 왔다갔다 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친구가 없었습니다.
항상 혼자었고 외톨이였습니다.
왜냐하면 산골에선 도시에서 왔다고 괜히 싫어하고,
도시에선 산골에서 왔다고 괜히 무시하고..
요즘말로 왕따였습니다.

어머니도 자리를 못잡으시고
고향에서 서울로 왔다갔다 하셨습니다.
다 자식때문이였지요.
가진것 없고 힘이 없으시니
친정에서 치이시고, 시집에서 치이시고...

네 식구가 모두 모여 살 수 있는 날이 언제일까?
쨘!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중학교 때였습니다.
왕십리 시장에 있는 낡은 이층집.
방 한 칸에 부엌.
행복했습니다.
새벽에 나가시고 밤늦게 들어오시는 엄마였지만
동생들과 지지고 볶고 싸웠지만 웃을 수 있었습니다.

행복은 넓고 큰 것에서만 있는게 아니였습니다.
행복은 좁고 작은 것에서도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엄마가 차려 놓은 아침을 먹고,
엄마와 한 이불속에서 잠들 수 있고,
그리고 혼자가 아니고 동생들이 있다는 것은
내게 있어선 세상에서 제일 넓고 큰 행복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