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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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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즐기는 추억


BY zinnia 2002-07-04

내가 전에 살던 곳은 정원이 있는 추운 집이었다.
옛날 주택집은 대부분 겨울에 한두번 씩은 수도가 얼었다.
그래도 엄마는 눈이 녹는 겨절이면 커다란 나무 한그루 씩을 사다가 심곤했다.
그러면 담장엔 샛노란 개나리 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고, 이윽고 오랜 지루함을 깨고 빨간 장미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나무에 약을 칠때면 창문을 다 닫고 코를 잡아가며 냄새를 참았다.
그뿐인가...
제일 싫어하는 송충이와 각종 애벌레들도 다 참아냈던 단하나의 이유는 풀벌레 소리에 탐스럽게 익은 대추를 따기 위함이다.
왼쪽 한켠에 있던 대추나무는 우리가 보유한 나무중 제일 컸고 매년 네다섯 소쿠리의 대추를 안겨 주었다.

사실 난 마당이나 정원이 있는 주택 보다는 아파트를 선호한다.
좀 더 솔직히 식물을 기르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데다 게으르기 까지 하여 생전에 엄마가 애지중지 하던 분재화분 몇개를 다 소생불능으로 만들었다.
그후로 지금 내게 있는 유일한 식물은 베란다 구석 비닐봉지 안에 뒹굴고 있는 싹튼 고구마 뿐이다.

그래도 지금처럼 가끔씩 여유로울땐 예전에 살던 그집에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분홍색, 흰색, 노란색 장미들이 아직 그대로 인지...
탐스러운 수국도 그자리에 있는지...
향기가 멋진 라일락도 여전한지...
하나 둘씩 따서 가지고 놀던 꽃사과 나무에 오늘도 나비가 찾아 왔는지...

벌써 20년도 훌쩍 지나버려서 나무도 집도 사라지고 없겠지만, 그곳에 두고 온 추억을 가져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