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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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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경험....무서운 손


BY 김경숙 2000-09-07

"깨가 쏟아진다"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신혼때였다.
아무도 없는 낯선 서울에 올라와 오직 남편과 함께 있다는 행복감에 도취되어 남편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외롭지 않을 자신이 있던 그 시절, 시간이 지날수록 무작정 좋을 것만 같았던 내 마음이 언제부터인가 짜증과 투정과 속상함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결혼 후 남편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의 무뚝뚝한 본성을 여실히 드러내기 시작했고, 오직 리모콘과 베개를 친구삼아 나의 존재를 무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남편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6시에 일어나 허둥대며 출근해서 사회생활에서 느끼는 이런 저런 스트레스와 신경들, 전철에 사람에 시달리다 보면 그래도 편안한 게 집이라 저녁먹고 TV보며 하루의 피곤에 나른함에 젖어 저절로 눈이 감기고 잠이 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만 남편은 그렇다손치더라도 나는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TV와 잠 때문에 서서히 다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날도 남편의 '잠'이 화근이 되어 크게 다투게 되었다.
저녁 9시경이었을까? 설거지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가 보니 남편이 TV를 보면서 잠을 자고 있었다. 사실 하루종일 남편만 기다리다 보니 남편의 피곤과 무관심때문에 우울증이 걸릴만큼 때때로 화가 치밀어올랐다. 속도 많이 상했고.
퇴근 후 이야기도 하고 산책도 나가고 가끔 외식도 하면서 다정한 시간들을 보내고 싶은 게 여자들의 마음 아닌가?

어쨌든 그 날도 일찍 베개를 베고 잠을 자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들어 나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몇 번 쯤 흔들었을까? 남편이 화가 난 목소리로 자는 사람을 왜 깨우냐며 짜증을 내었고 나는 그 말에 보란듯이 더 열심히 흔들어댔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벌떡 일어나더니 순간적으로 내 빰을 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잠을 깨운 일이 손찌검을 당할만큼 아주 큰 일인가 싶어 잠시 주춤거리다가 나도 화가나서 엉겹결에 남편의 얼굴을 때리고 말았다. 빰을 맞은 남편이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내 얼굴을 노려보는 순간 나는 남편의 표정이 너무도 무서워 그만 기절해 버렸다.

아마 그 때부터 남편도 제정신이 아니었는 것 같다. 물을 뿌리고 이름을 부르면서... 내가 눈을 반쯤 떴을 때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나의 앞에 앉아 잘못했다고 되뇌이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제서야 마음을 가다듬고 일부러 더 오랫동안 정신을 잃은 척 했으며 급기야 남편이 구급대에 전화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전화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서서히 일어났고 남편은 내 얼굴을 보면서 평온을 찾는 듯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남편은 절대로 손찌검을 하지 않겠다고 각서를 썼다.
또 TV시청도 주말에만 이용하기로 하고 일주일에 한번은 외식도 하고 가끔은 집안 일도 함께 하기로도.....

단 한번의 손찌검이 남편의 모습을 많이 바뀌게 했다.
세월이 훨씬 지난 요즘도 남편은 평일에 TV를 시청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책을 읽거나 대화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자는 남편을 깨웠을까 싶기도 하고 남편의 뺨을 때릴 수 있는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나 싶기도 하다.

남편의 손, 이제는 더이상 남편의 손이 무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