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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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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은 여자.


BY 雪里 2002-06-21


꽃을 다 떨구어낸 연산홍이랑
잎이 싱싱하고 보라빛 꽃을 매단 태국난이
뿌리를 드러 낸채로 한켠에 비스듬이 누워있다.

흙이 거의 다 떨어져 있어서
그대로 좀더 두면 시들어 버릴것 같은데
분위기가 스산한 안으로는 들지 못하겠어서
옆집 여자에게 슬쩍 언질을 주고 들어 왔더니
가게로 따라 들어 온다.

엊저녁 늦게 술에 취한 남편이
빨리 문 안 연다고 문 밖에 있던 화분을 들어서
그대로 유리문을 향해 던지고는
나오는 마누라를 붙잡아서
닥치는대로 두들겨 패대는데
이웃에서 나와 겨우 떼내서 숨겨 놓았더니
마누라 찾아 내라며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몽둥이를 휘둘러 놓아서
주방기구 다시 장만하려면 한달 번돈은
다 들어가야 할거라고 한다.

중국집에서 배달일을하던 남편과
주방에서 잔심부름하던 부인이
서로 눈 맞아서 독립해나와 차린 중국집.
그런대로 장사가 잘되어 넓혀 나온곳이
지금 이곳 우리 골목이란다.

친정부모님이 안계신 여자는
시집식구들이 무시하는 느낌이 들어
남편에게 서운하고
매일 주방에서 더운 열기와 씨름하는 남편은
일은 힘겨운데 나긋나긋하지 못한 마누라가 짜증스럽고.

그래서 매일 다툼이 생기고
술마시고 카드로 술값 긁고,
벌어서 카드빛 메우고나면 한달 헛 산것 같아
남편에게 상냥할 수 없다는게 그 여자.

그렇게 얽혀가고 있었다.
그녀의 삶이.

아직은 어린 아이들이 있고
살아갈 길이 까마득 먼데
같은 여자가 보아도 차라리 안될 남자면
일찍 접어 버리는게 나을거 같다며
열을 올리고 있는 닭튀김집 여자를 쳐다보며

그렇게 간단한게 아니라고
어린 애들은 어쩌냐고 설명을 하면서도
지금 목욕탕으로 피신해 있다가 들어와서
주방 정리를 하고 있는
중국집 젊은 여자가 한없이 안스럽다.

서로 다독이며 살아도 힘든 삶인데
서로에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돌아서 있는 그 부부가 안타깝다.

의자를 내놓고 길거리에 앉아서
한스런 그여자의 삶을 들어주고

그래도 어쩌겠냐며 애들에겐 좋은 삶을
만들어 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남편도 악인은 아닌듯 싶으니
조금씩 고쳐가며 살다보면 좋은날 있을거라고
좀더 먼저 살아온 삶을 그녀에게 가르친다.

속풀이 갔다는 남편이 돌아오면
부드럽게 대하라고 이르고는 가게로 들어왔으나
창밖으로 뵈는 그녀가 불안하다.

배달하는 사람들이 출근했다가
그냥 돌아가는게 보이고
불꺼진 중국집안엔
학교에 가지 못한 애들이 철모르고 떠들고 있다.

어릴적
아버지와 싸운 엄마가
딸둘을 데리고 이웃집에 피신해서 잤던밤.

한참을 자다봐도 엄마는
뒤척이고 계셨다.

"나는 절대로 술 먹는 남자완 결혼 안할거야!!!"

어린것 가슴에 박혔던 그 다짐이 얼마나 강했던지,
지금 술못먹는 남편이 가끔은 답답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랑스런 남편 모습중의 하나.

술 한모금 먹고 온몸이 뻘개져서
가쁜숨 몰아쉬고 누워버리는 그모습.


雪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