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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역


BY 백장미 2000-11-10


저녁놀


정한용


혼자 사는 늙갱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시유
내 일찍이 과부되야 사 남매를 혼자서 키웠는디

다덜 장성해서
맏이는 가방 맹그는 회사 사장님되고
둘째 애는 증권회사 이사님되고
셋째딸은 대학 때부텀 잘 놀더니 대학선상 사모님되고

막내는 지지리 고상만하더니
곧 자리 잡는다구 걱정말라구 그럽디다
지난번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 올 때 그 잘생긴 애가
걔가 막내유

다른 애들은 워낙 바쁘니께 올 새가 없었것지유
내가 죽을 병에 걸린 것두 아니구
와서 뭐해유?

큰애는 일 년에 한 절반은 외국으로 나댕기구
둘째는 굉일도 ?좃?일헌다 허구
셋째 년은 지 새끼들 밥멕여 학원보내야지 건사해야지
그래서 장개 못간 막내가 온거 아니유
괜잖아유

작은애 아즉 배필을 못만나 장개 못간 것이
늘 마음에 캥기는 거믄유
걔가 지 살림 차려서 따순 밥 먹고 댕기는 게
남은 바램이유

그것 밖에 없시유, 난 여한 없시유
아, 지들두 인간이믄 에미 보러 한번 오기야 오것지유
괜잖다니깐유
그런디, 의사 선상님 회진올 때 안되었시유?
왜 이렇게 자꾸 지랄허구 소피가 마렵드냐

아이고야, 저기 좀 봐유
창밖에 노을이 오늘은 참 곱게 걸렸구랴
내일은 날이 풀리것네



***
우리들의 삶...
그 기차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그리고 언제쯤 그 곳에 다다를 수 있을 지...
어떤 모습으로 그 종착역에 걸음을 놓을 지...
이 여행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네요.

곧 도착할 다음 역이 어디인지조차도 알 수 없는 우리이기에
아주 가끔 그저 막연한 상상으로 종착역에서의 나를 상상하게 됩니다.

긴 여행에서 지친 무거운 걸음, 두 손 가득 삶의 짐들이 들려 있는 모습이 될 수도 있고
처음 기차를 탔을 때 그랬듯이 참 가벼운 마음으로 편안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그 모습을 막연히 떠올리다보면 어느 새 기차는 또 하나의 역을 지나치고 있습니다.

여기, 삶의 종착역에 가까운 한 어머니가 있습니다.
함께 여행을 하던 남편을 먼저 종착역에 보내고 홀로 4남매를 키웠다 합니다.
다들 너무 자랑스레 자라주었고 굳이 걱정하자면 아직 혼자인 막내 뿐이라 합니다.

창 너머로 저녁놀이 곱게 내리는 병실에서 세월의 골짜기 사이로 미소를 짓는 어머니...
손에 쥐었던 하나 하나를 정리하며 애써 큰 목소리로 외로움을 숨기는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아픈 노을 빛입니다.
아마도 열심히 살아 온 나날이었지만
그럼에도 종착역에 가지고 내릴 짐은 외로움만 가득이라 그런 가 봅니다.

아무리 궁금해도 그냥 묵묵히 제 삶을 살며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필요하고
절대로 주어진 여행의 코스를 마음대로 줄여서도 안 되는 종착역에서의 내 모습...

비록 미리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지만
그 때의 내 모습... 이렇게 슬픈 노을 빛은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종착역에 이르렀음을 알고 마음 아플 때
그 아픔의 공간을 고마운 위로로 채워 줄 사람들이 있고
기차에서 내려 외로운 마음에 무심코 뒤를 돌아보면
기차 안에서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줄 마음 따뜻한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큰 욕심일 수도 있겠지요. ^^;;;
하지만 오늘은 그런 마지막을 생각하는 하루가 되려고 합니다.
그렇게 보낼 오늘들을 하루하루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종착역에 도착하게 되었을 때
다음 역으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종착역에 먼저 내린 나 자신에게
정말 뿌듯한 삶이었다고 따뜻한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