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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밥~이야기.....


BY 가을내음 2000-08-23


남편의  밥~이야기.....
밤 1시가 넘도록 남편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띵동'하고 벨을 누르자 비로소 천천히 문쪽으로 다가갈
뿐이다.
마치 낮에 신문구독 하라고 누가 벨을 눌렀을때 나갈때처럼.
이 낮설음은 무엇인가?
이것이 결혼 15년만에 갖게 되는 세월의 흔적들일까?

천천히 부엌으로 간다.
파르르 파란 불꽃을 내며 찌게냄비의 궁둥이를 밝히는 전자렌지를 본다.
찌게가 끓자 식탁에 사이좋은 부부처럼 수저와 젓가락을 놓는다.

이 늦은 밤에도, 아니 이보다 더 늦은 밤에도
그는 꼭 집에 와서 밥을 먹어야 한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날이건
아니면 멀쩡한 날에도 결코 예외는 있을수 없다.

차를 타고 오면서도 문자메세지로 "지금 가면 밥 먹을 수 있지"
라든지, "지금 여기 어디니까 밥해놔"하는 메세지를 남긴다.
밥은 당연히 그의 아내로서 주어야 한다.
하지만 저녁식사를 겸하는 술자리에서 조차 밥을 마다하고
다시 집에 들어와 밥을 먹는 그 심보(?)가 무엇인지를 물어봤다.
"집에서 먹는 밥이 제일 맛있어서", 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그렇지만은 않은것 같다.
그저 집에서 식사를 해야만 하루를 마감한다는 어떤 심리적인 면이 많이 작용을 하는것 같다.

늦게 들어오면 현관문을 열어주지도 않는 여자들도 많다는데
이 늦은 새벽에 와서 왜 그래요..라고 면박을 줘도
그는 열심히 먹을 뿐이다.

나는 그가 밥을 먹는 동안 식탁 마주편에 앉아서 재잘(?)거리며
오늘 있었던 이야기들을 정답게 할 줄을 모른다.
살풋 그가 오기 전까지 잠들어 있던 그 잠 때문인지 그 시각이
되면 정신이 없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야, 이 국물 쥑인다.~며 식탁에서 연신 이마에 땀을 훔치며 국물을 마시고 있다.

혼자 손으로는 냉장고에 들어있는 물도 제대로 컵에 따를줄 모르는 그가 또 나를 부른다.
귀찮아서 그가 앉아 있는 의자 곁을 모로 비켜가는데
언뜻 그의 머리에 하얀 머리카락이 보인다.

그도 많이 늙었나보다....
나는 더 이상 이 늦은 시각에 그가 밥을 먹은 것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이런 생활을 나의 고된 일상속에 남기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