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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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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 이야기


BY 쟈스민 2002-06-17

어제는 친정어머님의 기일이라 오랜만에 오라버니댁엘 들렀다.

같은 도시에 살고 있지만 저마다 하는 일이 있고, 바쁘게들 살고 있었기에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은 어머니 살아생전의 이야기도 하고,
그간의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끝에 오라버니의 집 바로 위층에 살고 있는
모 대학의 여교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예전에 어렵게 살던 이야기들을 하다가
마치 그녀의 인생역정도 만만치 않은것이었음을 예를 들듯 그렇게 스치며
올케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나는 문득 얼마전에 동창찾기에서 연락이 된 초등학교 친구가
마침 그 학교 00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었기에
그럼 혹시 그녀가 내 친구를 잘 알수도 있을 것 같아
다음에 그녀를 만나면 내 친구 000를 알고 있는지 물어봐달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참 어이없게도 내가 말한 이름이 바로 위층에 사는 그 교수의 이름과 똑 같은 거였다.

아니 이럴수가!!

올케언니와 그녀는 허물없는 이웃이었으며, 둘도 없는 친구처럼 지내는 관계라고 한다.

올케언니가 나보다 두살 위인데 어찌 그런일이 ...
처음엔 믿기지 않아서 이름만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으나
서로 얼굴을 본 우리들은 너무도 놀랐다.

그녀와 나 우리둘은 초등학교 시절에 노래부르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내 기억속의 그녀는 꾀꼬리같은 목소리에 갸름한 얼굴 ...
로 남아 있었다.

이십여년도 더 지나서 만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얼싸안고 기뻐서 어쩔줄 몰랐다.

여동생의 음악적 재능을 뒷받침해주지 못해서 늘 미안하다 하던 오라버니로부터
그녀는 진즉 나의 이야기를 듣긴 했었다 한다.
하지만 그의 여동생이 나일꺼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며
어쩜 이렇게 만나는 인연이 있다니!!하면서 내 손을 꼭 잡는다.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난 잠시 내가 그곳에 간 이유를 잊고 있는 듯 했다.

주거니 받거니 술도 마실줄 모르는 난 그렇게 오랜만의 해후를 축하하는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주방쪽에서 제사준비를 하고 있는 올케언니를 도와야 한다고 연신 마음은 그리하면서도
그 친구와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모처럼 오빠의 얼굴도 흐믓해 보인다.

사십이 다 되어 만난 그녀는 나보다는 나이가 두살 많다고 한다.
학교를 2년 늦게 들어갔지만, 나와는 동창생이니 친구이고,
올케언니와는 동갑나기이니 또 친구라고 한다.

나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일을 하며 살고 있었으나
그녀는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았단다.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오빠, 동생의 이혼으로 졸지에 돌볼사람이 없어진 친정조카를
5명이나 데리고 한지붕에서 그렇게 산다고 한다.

그녀는 조카들을 아들... 딸... 이렇게 부르며 자기 자식 키우듯 사는 사람이란다.

그동안의 살아온 세월속에 묻혀진 인생역정은 말로 다 할수 없는 것이라며
그녀는 끝내 눈시울을 적시고 만다.

일찌기 저 세상으로 간 큰오빠 대신 집안의 장남 노릇을 해야 했으며,
졸지에 단란한 가정을 잃어버린 조카들에게는 부모가 되어주어야 했단다.

그녀도 평범한 여자이고,
그 나이 먹도록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을리 만무한데
그렇게 헌신적으로 살아가는 그녀를 만나니
이런 사랑도 있구나 !! 나는 내심 감동스럽고 내 친구였지만 존경스러웠다.

모두들 자신을 위하여, 자신의 가족을 위하여 살기에도 오로지 분주하기만 한 세상에
자신의 한몸 희생하여 꽃다운 청춘 다 바쳐서 마음의 상처입은 조카들을 돌본다는 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을텐데...
조카들을 바라다보는 그녀의 시선은 내가 내 자식을 바라보는 그 시선보다
더 따스하고 포근해 보인다.

조카들 귀저귀 갈아가면서 대학원 공부하던 이야기, 눈물흘리며 우유 먹이던 이야기 ...
이제는 그 아이들도 웬만큼 자라서 고모라면 세상에 둘도 없이 고마워 한단다.

난 친구에게 말한다.
그간의 네가 쌓아온 공덕이 모여서 다 너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네가 이미 늦었다는 생각만 거둔다면 어딘가에 있을 너의 반쪽을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넌 만날수 있을 것이다라며
친구에게 희망적인 메세지를 남긴다.

힘든 역경을 견디어 내고 부지런히 노력한 덕분에
지금은 사회적인 지위도 있고, 자신이 뭔가를 해줄수 있는 입장이어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난 참 많은걸 배우게 된다.

나와 비슷한 햇수만큼 세상을 살아내면서
내 친구는 저렇게도 무거운 짐을 지고서 그 세월을 건너왔구나 싶으니
반가운 술잔이 마치 눈물이라도 된양 가슴이 젖어든다.

그녀의 억세어진 손마디를 보니
나만 힘들게 사는 것 같다며 가끔씩은 푸념을 늘어 놓기도 하던 내가새삼 부끄러워진다.

그렇게 억세어진 손으로 피아노를 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삶을 노래하였을 나의 친구가 한없이 자랑스럽다.

친구야!!
우린 이렇게 또 다시 만나는 인연이었구나.

지금이라도 다시 만나서 우리에게 남은 시간 살아내며
서로에게 좋은 이야기 들려줄 수 있으면 참 좋겠구나 ...

은쟁반위의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며
어린시절의 나에 대한 또렷한 기억을 꺼내서 가만히 내게 내미는 그녀의 웃음뒤엔
힘들게 오른 산을 이제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내려서는 나즈막한 한숨소리가
바람처럼 스치운다.

그래서 가슴아프고, 그래서 또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엄마의 제사를 모시고 나서 그녀와 난
서로에게 복을 빌어줄 수 있는 지금의 이런 만남에 감사하자는 말을 한다.

그녀의 깊은 바다와도 같은 넓은 마음을 잘 헤아릴줄 아는 수호천사가
어디엔가 꼭 있을꺼라는 믿음과 함께
우린 서로 힘껏 안아주며 헤어진다.

그녀는
여자인 내가 보아도 참 멋진 여자이다.
아니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간직한
이 세상 누구보다도 자애로운 어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