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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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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남자이야기 -나의 두번째 남자


BY 스카이 블루 2001-04-30

봄입니다.
따뜻한 햇살과 눈이 시리도록 푸른하늘이 부러운
봄입니다.
신촌부근을 지나면서
풋풋한 대학새내기들을 볼때면
문득문득 한친구가 생각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힘든 재수생활후에
대학을 들어갔죠.
남들보다 한살 많은게 좀 거추장 스러운 것이더라구요.
서클을 들어도 후배가 선배와 나이가 같으니
호칭문제도 그렇고 미팅때도 나이와 학년의 차이를
일일이 설명해야함이
참 불편하더군요.
그래, 한해 굽은 년이 무슨 미팅이며, 서클이냐
스스로를 상처내고 자학하며
신입생이 누려야 할 그 봄을 포기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집. 집에서 도서관.
그게 나의 일상이었죠.
한번은 비가 억수같이 내렸지요.
5월 초라 날씨가 따뜻해서 반팔을 입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린비탓에
기온이 내려가 팔에 소름이 돋고 추워
뭔가 따뜻한 게 먹고 싶었죠. 자판기커피라도 한잔
마실려고 동전을 ?고 있는데
"많이 추우신가봐요.이거 드세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커피의 진한 향을 맡으니
얼마나 반갑든지
누군지도 알지 못한체 고맙다는 눈인사만 하고 마셨지요.
온몸에 따뜻한 기온이 감돌고 나서야 저는 제앞에
바로 그커피를 뽑아다 준 학생이 앉아있다는 걸 알게되었죠.
집에오는길에 그남학생이 같은과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되었죠.
130명이 정원이라 누가 누군지도 잘 몰랐지요.
덕분에 커피도 마시고 우산도 씌워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끝으로 헤어졌어요.
그 일이 있고나서
강의시간에도 가끔씩 만나면 서로 옆자리에 앉곤했지요.
도서관에서도 누가 먼저라 하지않아도 옆자리를
비워 두곤 했지요.점심도 같이먹고 가끔씩
술마시러도가고 시험때면 열심히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호칭도 편하게 이름을 불렀어요.
가끔식 장난으로 "너 누나라고 불러.안그러면 꿀밤준다"
한살어린 그친구한테 별로 누나 대접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냥 한번씩 쏘는 말이었지요.
사람을 참 편하게 해주는 친구였어요.
주위에서 연상연하 c.c라 놀리면 우리는 장난치며
그래그래 우리결혼하면 청첩장 보낼게 그랬죠.
그렇게 2년이 흘렀어요.
그 친구는 집안사정으로 군입대를 하지않는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3년이되어도 같이 학교를 다녔지요.

한번은 그친구가 술을 산다기에
평소와 다름없이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츄리닝에
운동화를 끌고 약속 장소로 갔어요.
환한 그친구의 얼굴과 손짓을 금방 알아채고는
깊숙이 엉덩이를 안락의자위에 실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쏘세지볶음을 안주삼아 친구들 얘기.
교수님이야기. 앞으로의 진로이야기를 했어요.
조명등아래 그 친구가 좀 취했다 싶더니
고백할께있다면서 저를 옆자리에 앉히더라구요.
가끔씩 그 친구의 시선이 혹시나 라는 생각을
하지않은것은 아니지만
지금 사랑한다라는말을 듣고있는
이 순간이 웬지 모르게 서글퍼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전 그 친구를 좋은 동료로 생각했지요.
그 날밤 그 친구는 나의 거절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나봐요.
그 당시 결혼은 나와는 아주 먼 단어였고 그 친구에게
어떤 묘한감정이 생기지도않았죠.
그는 내게서 나는 향이좋고
비오는 날 보고싶더라는 얘기를 수없이 하면서
결혼하자고 했지요.
휘청거리는 그를 부축하며가는도중에
그의 몸부림으로 안경이 떨어져 박살이 나고
그를 택시를 태워 보내면서 불안한마음으로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그만두었지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는 보이지 않았어요.
3일째 그를보니 너무나 반가워 달려갔는데
그는내게 싸늘한 찬바람만을 남긴채 지나갔어요.
안경은 물론 다른 디자인이었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얻어 밤새도록
작업을하고 아침나절 집으로 가는 전철안에서
무거운 눈꺼풀이 사정없이내려오고.
아무렇게나입은 점퍼에는 풀딱지가 더득더득.
세수도 못한눈을 힘주어 떠도 쏟아지는 피로가
잠의 수렁으로 빠져들게했지요..
늦은아침이라 사람은별로 없었고
지하철안에서 졸아 본적이 없었지만
나는 그만꾸벅꾸벅 졸고 말았어요.
누군가가 흔들어깨우는 바람에 입가에
흘린 침을 팔꿈치로 닦으면서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지요..
어디서 본듯한 얼굴이 비웃고 있었어요..
그 친구였지요
열리는 지하철 문을 소리없이 빠져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지요.
그 친구의 이름조차 불러보지 못한 채

깨진 그안경 내가 물어주기라도 했더라면 덜 미안했을것을.
착한그친구를 꼭 그렇게 매몰차게 대해야했는지.
비오는 날이나 신촌부근을 가게되면 그 친구가 많이 생각납니다..
미안하다. 친구야 .
언젠가는 너를 편하게 다시 만날날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