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산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막 졸업 하고 중학교 진학은
꿈 도 꿀 수 없었던 탓에 산업현장으로 어린 나이에 뛰어들었다.
아침이면 난 공장으로 향했고 내 또래들은 예쁜 세라복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는 모습을보면 부럽기도했고, 내 자신은
잘못한것도 없이 괜히 미안하기도했다.
그럭저럭 일년이지나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산업체학교에
입학을 하고 낮엔 공장, 밤엔 학교를 다녔다.
그때만해도 그런 환경의 아이들이 많아 동병상련 심정으로
서로를 위로하면서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중3학년때 정깊은 담임 선생님을 만나게되었다.
힘든 우리들을 위해 항상 열심히 가르쳐주셨고,때론 직장을 다들
다녔지만 그 와중에도 생활이 어려운 친구들을 위해 당신의 월급을
쪼개 학비도 대주셨다.
그리고 스승의 날 이 되기전에 초등학교 은사님께 감사의 편지를
쓰게하는것도 잊지 않으셨다.
선생님 말씀을 실천하기위해 나는 내 모교 교장선생님께
서신을 올렸고 교장선생님으로 부터 편지가 왔다.
초등시절 육상을 잘 했기때문에 선생님께선 그것을 기억하시고
운동장을 달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하셨고, 여지껏
많은 학생들을 배출했지만 교직생활 하면서 처음으로 제자한테
편지를 받았노라고 하셨다.
그런 추억을 남기게 해 주셨던 선생님께서 우리가 졸업할 무렵
이런 약속을 하셨는데" 1999년 10월 세째 일요일 구포 낙동강다리에서 만나자고,"그때 쯤이면 아이 한,둘 낳아서 손잡고 오겠지
그러셨는데.....
선생님 고등학교시절 담임선생님께서 이러한 약속을 하셔서
지키셨는데, 막상 약속장소에 가니 선생님은 이미 하늘나라로
가셨고 사모님께서 나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약속날짜가 되기전 난 그약속을 지키기 위해
선생님께서 근무 하시던 학교로 연락을 드렸는데 소식을
거기선 모른다고했다.
친구들 한테도 수소문 했지만 아무도 모르고,
그렇게 1999년 10월 세째일요일은 가슴에 그림움만 더 깊게
만들고 지나가 버렸다.
그때 당시 선생님은 건강이 좋지 않으셨는데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러 연세도 있으시고......
선생님 정말 너무 그립습니다.
살아계신다면 꼭 뵙고 싶습니다.
김선준 선생님 진주가 고향이셨죠.
세월이 가기전 한번 만이라도 뵈올 수 있다면......
제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