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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48

사랑하며 가야할 인생이란 황톳길(아픈 님들을 위해)


BY 딸꼭단추 2001-04-27

며칠 전 '한 하운'님의 시집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세상의 저주라는 문둥병으로
소록도 나환자촌을 향하며 여정을 담담하게 쓴 '전라도 길'이라는 시입니다.


전라도 길
-- 소록도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길, 전라도 길


*****


님의 시에는 절망의 탄식도 고독의 몸무림도 없습니다.

세상으로 부터 저주받은 문둥이끼리 오직 한 곳,그 곳을 향할 수
밖에 없는 여정에서 그네들 끼리 반가워 하는 모습

한 숨 쉬었다 가는 나무 밑에서
남은 발가락 수를 말없이 확인하며

남은 두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그저 그저 천리길 그 곳을 향해 가는 여정

문둥이 가는 황톳길 먼지와 여간해서 지지않는 지글지글 타는
한여름의 긴긴 해......


절망은 이미 있는 희망을 외면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독은 내게 나눌 수 있는 사랑의 능력이 있음을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하운 님의 시에는 절망과 고독의 몸부림이 없는 것이
정말 고독하고, 정말 절망적입니다.

오래 전,
오랫동안 육신의 질병으로 고독하고 절망적인 세월을 보낼 때
'한 하운'님의 시집을 보았었습니다.

님에게 너무 미안했고
어쩌면 마음의 문둥병을 가지고 있었을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하였습니다.

육신의 질병은 고단한 투쟁입니다.
질병때문에 마음이 얼마나 연약해지는지요.

그러나,
질병 중의 고독과 절망은 많은 감사의 이유를 발견할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아프게 절망하는고독한 이들을 위로할 줄 아는 귀한 심령으로 태어나
기도 합니다.

한 하운님은 나병을 완치하신 후, 남은 여생을 나병 환자들을 위해
일하다 57세로 돌아가셨습니다.

질병으로 아파하는 님들의 고통이 남의 일이 아닌 듯 합니다.
위로가 되고싶은데 아무 재주가 없습니다.

한 하운님의 시 한편 더 띄웁니다.


생명의 노래


지나간 것도 아름답다
이제 문둥이의 삶도 아름답다
또 오려는 문드러짐도 아름답다

모두가
꽃같이 아름답고
....꽃같이 서러워라

한세상
한세월
살고 살면서
난 보람
아라리
꿈이라 하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