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듯한 더위가 벌써부터 사람을 지치게 한다.
아... 세월은 참 빠르기도 하지 어느새 여름이라니...
지난 가을부터 지금까지 거실에서 포근한 쿠션감을 안겨주었던
카페트를 손질하여 돌돌 말아두고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대나무자리를 꺼낸다.
우리 집에 온지 햇수로 3년째인 그 녀석은 이젠 제법 반들반들 윤기가 흐른다.
은은한 나뭇잎새 프린트 되어진 눈이 부시게 하이얀 러너를 식탁위에 얹는다.
십자수 놓은 주방커튼도 오늘따라 두꺼워 보이길래 얇은 아사면으로 된
흰색 커튼으로 바꾸어 준다.
골고루 햇빛 받아라 화분들도 이리 저리 돌려 놓고는
시원한 물 뿌려준 후 잎사귀마다 먼지를 닦아 낸다.
좀 두꺼워 보이는 이불을 까슬까슬한 여름용으로 바꾸어 주고 나니
그제서야 좀 흐믓한 미소 지어보는데 ...
며칠전부터 친구들과 해 둔 약속대로 아이들 둘은 모두 수영장으로 달려가고
난 비로서 커피 한잔 곁에 내려 놓아 본다.
계절이 바뀔때마다 알게 모르게 주부들의 해야 할일은 곳곳에 널렸다.
베란다 창틀에 낀 먼지가 아까부터 자꾸만 나의 마음을 영 찜찜하게 붙드는데도
짐짓 모른체 하고는 음악을 튼다.
오늘 하루도 만만찮은 기온의 상승으로 한낮에는 제법 불쾌지수를 높여줄것만 같은 날씨
모처럼 맞은 하루의 휴일을 그냥 그렇게 보내자니 조금은 억울하기까지 하다.
하루쯤은 느긋하게 지내보자고 말은 늘 그리하면서도
무엇인가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그 마음 주체할 수 없어서
아무생각없이 무슨 일엔가 몰두하고 있을 때가 가장 편안한 심리상태인 것 같다는
모순된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어디선가 불어와 준 바람에 살랑이는 키 큰 나뭇잎의 흔들리는 몸짓이 사랑스럽다.
다시 돋아난지 얼마 안되는 듯 여린 새순은 어찌 그리도 이쁜 연초록을 띄우던지
음악을 들려주고, 진정으로 널 아낀다는 듯 몇마디의 말을 나눈다.
오늘도 일이 바쁘다며 새벽 같이 일하러 간 남편은 지금쯤 어디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늘 혼자 남겨진 가구처럼 쉬는 날에도 함께 하지를 못한다.
그럼에도 늘 그 자리에 자리 잡은 오래된 나무처럼 둥지를 지키는 새라도 된 듯
기다림의 연속인 삶속에 덩그라니 놓여 있다.
집안 곳곳에 수놓아 만든 액자며, 쿠션이며, 추억이 묻어 있는 물건들을 바라보며
그 모든것이 집착은 아니었는가 새삼 지나간 시간들이 돌아봐 진다.
나는 주기적으로 무엇엔가 미쳐 지낸듯 하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수를 놓고,
계절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무슨생각엔가 빠져서 지낸다.
지나고 나서 다시 같은 작품을 만들어 보라고 하면 죽어도 다시는 못할 것만 같은
그 열정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내가 모르는 내 모습이 너무도 많다.
알다가도 모를 나는 모처럼 주어진 하루의 시간도 정신없이 무엇을 하지 않으면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어쩌면 지나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 같기도 하다.
일을 하고 있는 여자라고 해서 살림은 적당히 해도 될꺼라는 생각에
스스로 동의하지 못하는 까닭에
나의 그런 종종거림은 언제까지나 계속될테지만,
자연의 바람이 좋고, 싱그러운 초록의 향이 좋고, 산뜻함이 감도는 나만의 쉼터를
언제까지라도 가꾸며 살고 싶음에 오늘 하루도 뭘 했는지 모르게 바쁘게만 지나간다.
너무도 빠르게 흐르는 세월탓을 하며
나는 또 새로운 계절 여름을 그렇게 맞아들이고 있었다.
삼십대의 마지막 여름의 문턱에서
약간은 우울한 것도 같고,
뭔가 할일을 다 하지 않은 것 같은 미진한 느낌이 들기도 하면서
늘 그자리에 놓아 두고 산 나를 꺼내어
말끔하게 닦아도 보고, 가지런히 내려 놓아도 본다.
그러면서 서른 몇의 여름을 그 어느해 보다도 열정적으로 살아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슬며시 고개를 쳐들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초록이 깊어가는 여름의 문턱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