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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될수록 좋은 것들


BY 쟈스민 2002-05-30

우연히 아파트 모델 하우스엘 들렀다.

집은 이미 샀으니 또 집을 사러 간것은 아니고...
이웃이 집을 분양받는다고 하여 그냥 한번 따라나선 길이다.

와글와글 사람들이 북새통이다.

한쪽에서는 기념품으로 양파를 나누어 준다는데 망으로 된것 하나만 갖고 가라고 함에도
사람들은 저마다 바리바리 무거워 보일 만큼의 양파를 들고 간다.

우리 일행은 뜻밖의 선물을 받은지라 차에 실어 두고는 모델 하우스 구경을 시작했다.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곳이 집인데 굳이 그렇게 집이 유행에 민감해야할 필요가 있는걸까?
무엇무엇을 서비스로 준다는 도우미의 안내방송과,
사람들의 질문하는 소리, 안내원의 설명하는 소리로
온통 아수라장이다.

난 그냥 함께 가자는 제안이 있었기에 ...
안목을 높히는 차원에서 뭔가 공간활용을 할 수 있는 생활의 지혜를
얻을 수도 있겠다 싶어 따라나선 길이었는데
아무래도 괜히 간 것 같다는 생각이 돌아오는 내내 들었다.

오늘 본 모델하우스의 평수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보다 조금 넓은 평형이었는데
분양가는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갓 결혼하여 단독주택 2층 방 두칸짜리부터 시작한 살림 ...
이리저리 몇번의 이사 끝에 겨우 겨우 내집이라고 장만한 지금의 아파트 ...
아파트 분양을 받아 놓고 남편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바람에
허리가 휘게 중도금을 붓던 기억들 ...

모델하우스를 둘러보는 내내 난 집구경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힘들게 집장만을 하던 생각,
처음 입주하여 너무 좋아서 잠이 다 오지 않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갈수록 유행에 민감하고, 생활의 편리를 추구하며 살림하는 주부들의입맛에
잘 맞게 지어진 집으로 기가 막히게 홍보를 하곤 하지만,
살다보면 분명 오래될수록 좋은 것들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새집에 이사를 들어가기전 내 딴에는 근사하게 꾸미고 싶다는 소망에
지쳐 힘들어 하는 아이를 데리고 평일날 퇴근하고서 발이 부르트게
가구를 고르던 기억들 ...

이젠 그 가구들도 내 손때 묻어 제법 익숙해졌으며, 정이 들때로 들었다.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 소중한 설레임이 간직된 집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이지 싶다.

살다보면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 더 좋은 환경으로 이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물론 들기도 하겠지만,
쉽게 떨쳐질 수 있을까 ... 솔직히 자신이 없다.

아무리 근사하게 잘 꾸며지고, 치장한 세련된 모델하우스를 보아도
지금 살고 있는 정든 집 보다 더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오래된 친구가 더 정이 가듯, 편안해서 자주 입는 옷이 비싸기만 한 옷보다 자주 손이 가듯
소박한 지금 이대로가 좋다.

나이만큼 그렇게 꼭 큰평수로 아파트를 늘려 가며 살아야만
정말로 잘 살아내고 있는 것일까?

힘들고 어려웠지만 소박했던 시절들이
너무 쉽게 우리의 머리속에서 잊혀져가고 있지는 않은 것인지
좀 아쉬움이 인다.

내가 아는 바로는 아파트는 분양을 받고 2년후에 입주해 보면
벌써 유행이 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일이 그 유행에 쫓아가며 살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그런일에 발빠르게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돈이 쓸데가 없어서 걱정인 듯
별로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좀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하여서 모든 면에서 풍요로운 생각으로
살아지는 것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래도록 곁에 둘수록 좋아지는 것들 ...

그런것들을 하나 둘 늘려가는 것도 좀더 남다르게 세상을 살아내는 지혜로움이 되지 않을까?

유행에 조금쯤은 뒤떨어진 듯 해도 자신만의 감각으로 작은 생활속의 변화를
기꺼이 만들어낼 줄 아는 주부의 손길이야 말로
생활의 커다란 악센트가 되어줄 것 같다.

이제 햇수로 2년이 넘은 우리가 사는 아파트
오늘부터라도 좀더 바지런히 쓸고 닦고 살뜰히 가꾸어
언제 보아도 반짝반짝 윤이 나서
정녕 오래된 것이 맞을까 하는 의아스러움이 들게 해보는 건 어떨까?

오래될수록 좋은 것들은 참 많기도 하다.

친구가 그러하고,
발에 잘 맞는 신발, 어디에 뭐가 들어 있나 나만이 아는 가구,
어머니의 손맛이 베어나는 고추장, 된장,
습관적으로 눈만 뜨면 나오게 되는 나의 일터가 그러하다.

처음에 이 집에 이사를 와서 한 1년간은 참으로 부지런하게 쓸고 닦으며 살았다.

어느 책에선가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의 지나친 청결습관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을 읽고나서
그 후로는 조금쯤 느슨하게 사는 것도 참 괜찮구나 느끼는 순간부터
좀 풀어 두고 산 듯하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편안함을 주는 이 집에서
나는 앞으로도 한 10년 정도는 더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도 빠르게 흐르는 유행의 물결속에 모두가 새것만을 선호하는 요즈음
새삼 오래될수록 좋은 것들을 잠시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