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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바다에게만 털어 놓곤 하였던 그 푸른 그리움


BY allbaro 2001-04-20

늘 바다에게만 털어 놓곤 하였던 그 푸른 그리움

아침에 긴 꿈에서 깨어 났습니다. 이상스레 벌써 몇 일째 당신의
꿈입니다. 당신의 기억을 아예 잊으려 그저 당신에 관한 일이 조금
이라도 떠오를라 치면 나 스스로에게도 뭔가 화가 난 사람처럼 쓸
데없는…을 중얼 거리곤 합니다. 때로 그소리가 조금 새어 나가서
옆사람들이 뭔데… 라고 되 묻기도 합니다. 겸연쩍게 아니야 라고
우물거리지만 항상 단단하게 마음을 먹으려, 또 산다는 것이 늘 우
연의 연속이므로 혹여 길에서 마주치거나 하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삽니다. 아니 혹은 그 반대인지도 모르지요. 정말 모
르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여자들 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내 마음을
나도 몰라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잠시 침대 머리에 앉아 꿈의 조각들을 모아봅니다. 당신과
나는 아직도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고 뭔가 젖은 장작에 불을 붙인
듯한 뽀얀 연기와 같은 앙금이 서로의 시야를 가리고 있슴을 느낍
니다. 당신의 표정과 얼굴엔 뭔가 불투명하고 명확하지 않은 흐려
짐이 있고 나는 불안이 나의 얼굴에 덕지덕지 앉아 있슴을 느낍니
다. 나는 유령이 되어 떠 있는 것처럼 우리 두사람을 모두 다 한번
에 살펴 봅니다. 어찌보면 흑백 TV를 보는 듯한 느낌이지만, 나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즉시 알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감정의
조절 역시 동시에 내가 한다는 것이 드라마와 다를 뿐입니다. 우리
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꿈을 깨면 즉시 참 신기하게도 기억
이 나지 않지만, 나는 저녁 무렵 가을비가 소리도 없이 대지를 조
금씩 물빛으로 물들여 가는 당신의 그 느낌만이 코 끝에 남아 있습
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철저한 우울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신과 나
그렇게 함께 일적에 봄의 화사한 꽃비 아래를 걸은 적도 많았고,
그 속에서 긴 포옹과 겸연쩍은 미소와 사랑해… 라는 어색한 고백
과 그리고 그리고… 그렇게 봄 꽃들의 두 볼과 같은 뽀얗고 아름다
운 기억도 많은데 왜 늘 당신은 그런 눈매로 나타나고, 나는 왜 이
렇게 쓸쓸함을 아직 덜 깬 공간에 홀로 남겨 두는 지 정말 모를 일
입니다.

어찌보면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러간 것두 같고 또 어찌보면 어제
일 같기두 합니다. 손을 내밀어 마치 영원히 그 자리에 있기로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손이 닿는 담배를 찾습니다. 눈은 위치를 파악
하지 못하였는데 손이 담배를 먼저 찾는 것은 언제나 참 신기한 일
입니다. 담배 연기속에 어찌나 많은 생각이 떠도는지 그만 어질해
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연기가 빠져 나가는 창 밖에는 미류나무의
잔가지가 조금씩 자라고 토끼귀 같이 쫑긋한 어린 잎사귀만이 나
의 한숨을 듣습니다. 점점 말이 없어지고 고독의 껍질이 단단해져
가는 나는 당신을 향한 사념의 꼬리가 계절을 따라 무성히 자라남
을 느끼고 매일 조금씩 더 숨이 차 오릅니다.

조금 더 있으면 여기저기 깊숙한 봄의 향기 속에서 마치 무엇에 취
한양, 사람들은 봄의 한가운데로 똑바로 걸어 들어 갈 것입니다. 그
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어느날 낯선 거리에서 숙취의 밤이 깨
어난 것 처럼 어리둥절해 할 지도 모릅니다. 지난 봄에 나는 왜 그
랬을까… 무엇에 홀린 것 같이 그런 용감한 짓들을 감행 하고 말았
던 것일까. 때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생각보다도 깊은 상처를 그
저 봄의 부추김으로 너무나 거리낌 없이 가슴에 새기게 될지도 모
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손을 뻗으면 물컹하게 만져지는, 늘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기억과 그 축축하고 어두운 사랑의 뒷길에서
서성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물론 의미 없음을 알지만 당신이 이렇게 내 꿈에 자주 나타나는 이
유가 무엇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몇 번 말 없이 끊어진
전화를 생각합니다. 애써 있지도 않은 우연과 요행들을 줄지어 모
아 놓고 이런저런 생각이 다시 꼬리를 잇습니다. 그만! 그만! 아마
도 곁에 누군가 있었으면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만큼 조그만
소리가 나의 입술을 비집고 나갑니다. 당신을 사랑한 그 봄의 기억
으로, 그 짧고 찬란한 기억으로 나는 평생을 함께 할 우울과 회한
을 얻고 말았습니다. 당신의 미소가 봄 햇살을 닮은 것을 알고 난
뒤로, 봄이 불쑥 찾아 오면 안절부절 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언제까지 이 물속에 잠긴듯한 삶이 계속 될지 그것도 전혀
알지 못 하겠습니다.

나는 아직 당신께 못다한 말들이 많습니다. 그때 세상이 부서져 버
리는 듯한 이별의 날에, 돌아서 가는 당신에게 하고픈 수 많은 말
들이 한꺼번에 감금을 당하여 아직도 가슴속에서 응어리로 굴러 다
닙니다. 오늘은 정말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잠이 들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오늘 밤에 다시 당신의 꿈을 꾼다면 그 수 많은 밤에 하지
못하였던 이야기를 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수 많은 날들을
감금 당하여 있던, 보고 싶었고 사랑했노라는 이야기를 언제까지고
늘어 놓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바다에게만 털어 놓곤 하였던 그
푸른 그리움의 이야기를 단 한번만이라도 당신께 하고 싶어요. 어
쩌면 또 다른 꿈에서도 아무말 하지 못 할지도 모르지요. 아무리
꿈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많은 말이 남아 있기 때문에, 정말로 긴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르는 일 입니다. 알고 있나요. 당신없이 지낸
그저 부스러진 조그만 시간도 내겐 언제나 마음 시린 영원 이었답
니다.

창을 엽니다. 미명의 봄 햇살이 쏟아져 들어 옵니다. 어리둥절한 듯
검은 공간의 이곳저곳을 돌아보지만 그 밝고 쾌활함도 꿈의 조각들
이 흩어져 있는 공간을 어쩌지는 못합니다. 나는 하루치의 우울을
아침 일찍 복용하고 말 뿐입니다.

새벽 안개 같은 우울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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