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순씨는 하반신 마비로 1급 장애인이다.
5년전 시장에 갔다오다 4톤 트럭에 치여
허리 아래쪽은 아예 마비가 되어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병원치료는 모두 끝나고 집에서 내내누워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지내야만 할때
영순씨를 만나게 되었다.일주일에
한번씩 돌아가며 아침부터 저녁 나절까지 밥,집안일을 챙겨놓고
돌아온다.
사고후 2년넘게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트럭운전자를 원망하고 듣는 사람들이 민망할정도로
욕을 해댔다. 내가 일이 있어 못갈때 대신
젊은 엄마들을 보내면 두번다시는 안간다고 했다.
봉사자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 영순씨였다.
'내가 아파 누워있으니 당신들이 봉사랍시고
할수있는 빌미를 만들어 주지 않느냐' 는 식으로
고마움을 모르는척 했다.
조금 늦게 가면 배가 고파 죽겠는데 왜이리 늦게 오냐며
노골적으로 짜증도 내고 이것 저것 요구 사항도
당연하게 미안한 기색없이 봉사자들에게 시켰다.
생리가 있는날에는 냄새가 많이나지만 내색도 못하고.
생리대를 갈아주고
이불도 더렵혀지기 때문에 빨아놓고 와야만 했다.
천사의 탈을 쓴척 하는 나도 어떨때는 한계를
느껴 그만두고 싶었던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미연씨와는 판이하게 다른 영순씨를
대하면서 누어있는 마음이 오죽하랴 싶어
사지멀쩡한 내가 그것도 못참냐며 스스로 체면을 걸기도 했다.
그래도 꾸준히 자신을 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집안일
을 해주는 봉사자들에게
차츰 영순씨는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소변을 밑으로 호수로 받아내기때문에
병원환자복 바지를 입고 나가기 싫다 하여
양재를 배운 나는 예쁜 천을 끊어
앞을 튀여 바지를 만들어 주면 너무 좋아했다.
철따라 몇개의 바지를 만들어 주는 나를 언니라 부르며
가깝게 다가 오기 시작했다.
바람쐬우고 싶다하여 바닷가로 차에 태우고
나가면 테이프따라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친구집도 가고 싶다하여 같이 가면 시간 가는줄 놀고 있어
돌아와야 하는 우리를 애태우게도 하였다.
여러 봉사자들의 설득과 꾸준한 노력으로 영순씨는 자신을
치인 트럭기사를 용서하기 시작했고,
방송국에 글도 써내어 상품도 받았다며 좋아하기도 하고
복지관에서 컴퓨터도 배운다며 자랑하는 모습을 본것으로
끝으로 헤어지게 되었다.
여전히 소리없이 많은 봉사자들이 돌아가며 영순씨와
같이 잘 지내고 있을것이다.
영순씨말대로 우리들은 '봉사'라는 명목아래 자신을 미화하지는
않았을까라는 반성도 하게 되었고, 인내도 배우고
온전히 마음을 비워
상대방을 진실로 대하는 방법도 배웠다.
한치앞을 내다볼수없는
우리도 그런 상황에 처할지 누가 아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