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금요일이었다. 성당에서 제대 꽃을 꽂다가 성당 바로 앞 여고 졸업식장에 정성들여 만든 양란 꽃다발을 혹여 고운 잎 하나라도 다칠까 가슴에 살짝 보듬고 교문에 들어섰다. 친구 딸이 성당 바로 앞 여고에 다녔는데 그날 졸업식이 있었고 그 졸업식장에서 친구 남편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사실 4년전 그때만 해도 친구란 불리움보다 아들아이 학교에 학부형의 인연으로 알게되었고 하루 하루 지내가면서 떨여져 사는 오랜 친구들 보다 오히려 가까운 지척에서 자주 마주하는 그녀가 친구로는 더 더욱 정겨움의 자리로 다가와 있었다. 졸업식장에서 처음 인사를 하게된 친구의 남편~ 20여년 세무 공무원으로 계시다 명퇴를 하셨다 했다. 날카로운듯 그러면서 인자함이 내비쳐 지고 마른 체격에 샤프한 이미지의 첫인상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작년 우리 아들 아이가가 대학 1학기 수시모집에 합격하여 이른 합격 소식이 전해지자 너무나 기뻐하시며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시던 분이었고 체격보다는 훨 크신 목소리로 전화선 넘어 쩌렁 쩌렁 하던 그 음성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친구의 남편과 어제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오열 속에... 3일전 깊은 새벽 그때 까지 귀가치 않은 남편을 기다리다 거실에서 잠이 들었나 전화벨이 두어번 울려 얼른 받아보니 툭하고 끊어져 남편이었나 싶어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보니 통화가 안되고 잠시 서성이다 다시 잠이 들었었다. 딸아이 학교 보내고 휴~~하고 앉았는데 전화벨이 다시 요란스레 울렸다. 아주 가라앉은 목소리로 울먹이는 친구~ 남편이 죽었단다. 아니! 다시 말해봐 무슨 소리야~~ 다시 한번 그친구 목이메여 제대로 말을 못하며 남편이 새벽에 죽었다는 것이다. 새벽에 3시 그전화는 졸지에 눈앞에서 보게된 남편의 죽음에 당황한 그친구의 전화였단다. 나도 그 친구도 엉엉대고 울다가 지금 어디있냐 물으니 영안실이란다. 그 아침까지 연락 두절인 남편~ 술 좋아하는 남편~ 결코 남의집 일만 아닌듯 남편의 핸드폰에 음성을 남겼다. 당신 잘들어요 저랑 어디좀 가요 ~ 당신이 이대로 계속되면 얼마후 당신의 모습이 될지도 몰라 빨리 연락해요 그렇게 말이다. 곧 남편과 연락이 되고 병원 영안실에 찾아드니 썰렁하기만 한 영안실~ 이르게 도착한 탓인지 영정 사진속에 아직은 너무나 젊은 친구 남편이 하얀 국화 네모진 사진 틀 안에서 웃는듯 우는듯 그렇게 ... 술을 그리 좋아하던 친구 남편 4년간 소주와 늘 친구되어 거의 은둔에 가까운 세월에 술로만 살았던 사람 그 사람이 거기 있었다. 죽음으로 말이다. 조문객들은 모두 입을 모아 성품이 곱고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다 했다. 그러니 명퇴후 그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술에 의지하여 친구도 동료도 멀리하고 혼자만의 세계에서 술로 벗하여 지내다 결국은 한창 부부로써도 재미질 나이에 아이둘 다 대학 보내고 나름대로 한가한 여유와 행복을 누릴 나이 50에 저리 가게 된것이다. 화장을 한다했다. 새벽 5시 발인을 하고 화장터에 도착하니 순서대로 라면서 번호가 두번째란다. 기가 막혔다. 어찌 이리 허망하게 갈수가 있을까~ 병원에 한번도 못가보고 세상과 이별하던 날도 술에 취해 죽는건지 사는것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간것은 아닐까? 그간에 얼마나 몸이 쇄약해 졌을까? 아들 아이 친구들이 운구를 하는데 너무나 가벼히 들어 나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니 더욱 가슴이 메어졌다. 뜨거운 불속으로 사라져 한줌의 재가 되는데 1시간30분이 결렸다. 뭐가 그리 급했을까? 3일간 병원 영안실서 나름대로 일을 도왔다. 친구의 시집이 우리나라에서 꽤나 이름난 기업에 적을둔 사람이라고 했다. 평소에 친구는 그런 가문을 자랑삼아 이야기를 했는데 친구 남편의 장례를 치루면서 왜 친구 남편이 외로움속에 술로만 벗을 하려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너무도 갑작스런 죽음에 냉냉해 뵈는 그 가족들 그 핏줄들~~ 목놓아 울어주는 사람도 없고 밤이 깊어지자 결코 호상이 아니건만 다들 집으로 가서 자고 아침에 오는 그 광경을 보고 그저 기가 막힐뿐이었다. 겨우 이틀의 불편한 잠자리가 그렇게 참기 어려운 것이었을까? 아침이면 다들 말끔히 닦고 출근하듯 나타나는 그 가족들을 보고 아무리 돈이 많으면 뭘하고 아무리 배운 학식이 높으면 뭘하는지 속으로 혀가 차졌다. 초라하기만한 장례를 보고 그렇게 쓸쓸히 가버린 친구 남편이 더 더욱 측은하고 가슴이 아퍼서 손수건 적시며 울었다. 지금 어느 하늘 어느곳에 노곤한 이승의 삶을 덮고 저승에서 계실까? 경원이 아빠~~ 처음 당신을 만나던 날은 2월 바람이 차던 날이었지요~ 지금은 꽃도 피고 새도 우는 고운 봄 5월입니다. 부디~ 이제는 그곳에서 평화의 안식을 누리시고 그곳에서는 술과 절대 벗하여 그러지 마세요~ 어제 경원이 아빠에게 오열하면서 경원이 엄마는 술한잔 따르며 좋아하는것 더 먹고 가라고 따르더이다. 그술이 마지막 잔이 되고 이제는 정말 하늘 나라에서 좋은 곳에 머믈기를 기도합니다. 안녕히 ~~~~~~~~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성당에서 제대 꽃을 꽂다가 성당 바로 앞 여고 졸업식장에 정성들여 만든 양란 꽃다발을 혹여 고운 잎 하나라도 다칠까 가슴에 살짝 보듬고 교문에 들어섰다.
친구 딸이 성당 바로 앞 여고에 다녔는데 그날 졸업식이 있었고 그 졸업식장에서 친구 남편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사실 4년전 그때만 해도 친구란 불리움보다 아들아이 학교에 학부형의 인연으로 알게되었고 하루 하루 지내가면서 떨여져 사는 오랜 친구들 보다 오히려 가까운 지척에서 자주 마주하는 그녀가 친구로는 더 더욱 정겨움의 자리로 다가와 있었다.
졸업식장에서 처음 인사를 하게된 친구의 남편~
20여년 세무 공무원으로 계시다 명퇴를 하셨다 했다.
날카로운듯 그러면서 인자함이 내비쳐 지고 마른 체격에 샤프한 이미지의 첫인상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작년 우리 아들 아이가가 대학 1학기 수시모집에 합격하여 이른 합격 소식이 전해지자 너무나 기뻐하시며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시던 분이었고 체격보다는 훨 크신 목소리로 전화선 넘어 쩌렁 쩌렁 하던 그 음성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친구의 남편과 어제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오열 속에...
3일전 깊은 새벽 그때 까지 귀가치 않은 남편을 기다리다 거실에서 잠이 들었나 전화벨이 두어번 울려 얼른 받아보니 툭하고 끊어져 남편이었나 싶어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보니 통화가 안되고 잠시 서성이다 다시 잠이 들었었다.
딸아이 학교 보내고 휴~~하고 앉았는데 전화벨이 다시 요란스레 울렸다.
아주 가라앉은 목소리로 울먹이는 친구~
남편이 죽었단다.
아니! 다시 말해봐 무슨 소리야~~
다시 한번 그친구 목이메여 제대로 말을 못하며 남편이 새벽에 죽었다는 것이다.
새벽에 3시 그전화는 졸지에 눈앞에서 보게된 남편의 죽음에 당황한 그친구의 전화였단다.
나도 그 친구도 엉엉대고 울다가 지금 어디있냐 물으니 영안실이란다.
그 아침까지 연락 두절인 남편~
술 좋아하는 남편~
결코 남의집 일만 아닌듯 남편의 핸드폰에 음성을 남겼다.
당신 잘들어요 저랑 어디좀 가요 ~ 당신이 이대로 계속되면 얼마후 당신의 모습이 될지도 몰라 빨리 연락해요 그렇게 말이다.
곧 남편과 연락이 되고 병원 영안실에 찾아드니 썰렁하기만 한 영안실~
이르게 도착한 탓인지 영정 사진속에 아직은 너무나 젊은 친구 남편이 하얀 국화 네모진 사진 틀 안에서 웃는듯 우는듯 그렇게 ...
술을 그리 좋아하던 친구 남편 4년간 소주와 늘 친구되어 거의 은둔에 가까운 세월에 술로만 살았던 사람 그 사람이 거기 있었다.
죽음으로 말이다.
조문객들은 모두 입을 모아 성품이 곱고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다 했다.
그러니 명퇴후 그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술에 의지하여 친구도 동료도 멀리하고 혼자만의 세계에서 술로 벗하여 지내다 결국은 한창 부부로써도 재미질 나이에 아이둘 다 대학 보내고 나름대로 한가한 여유와 행복을 누릴 나이 50에 저리 가게 된것이다.
화장을 한다했다.
새벽 5시 발인을 하고 화장터에 도착하니 순서대로 라면서 번호가 두번째란다.
기가 막혔다.
어찌 이리 허망하게 갈수가 있을까~
병원에 한번도 못가보고 세상과 이별하던 날도 술에 취해 죽는건지 사는것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간것은 아닐까?
그간에 얼마나 몸이 쇄약해 졌을까?
아들 아이 친구들이 운구를 하는데 너무나 가벼히 들어 나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니 더욱 가슴이 메어졌다.
뜨거운 불속으로 사라져 한줌의 재가 되는데 1시간30분이 결렸다.
뭐가 그리 급했을까?
3일간 병원 영안실서 나름대로 일을 도왔다.
친구의 시집이 우리나라에서 꽤나 이름난 기업에 적을둔 사람이라고 했다. 평소에 친구는 그런 가문을 자랑삼아 이야기를 했는데 친구 남편의 장례를 치루면서 왜 친구 남편이 외로움속에 술로만 벗을 하려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너무도 갑작스런 죽음에 냉냉해 뵈는 그 가족들 그 핏줄들~~
목놓아 울어주는 사람도 없고 밤이 깊어지자 결코 호상이 아니건만 다들 집으로 가서 자고 아침에 오는 그 광경을 보고 그저 기가 막힐뿐이었다.
겨우 이틀의 불편한 잠자리가 그렇게 참기 어려운 것이었을까?
아침이면 다들 말끔히 닦고 출근하듯 나타나는 그 가족들을 보고 아무리 돈이 많으면 뭘하고 아무리 배운 학식이 높으면 뭘하는지 속으로 혀가 차졌다.
초라하기만한 장례를 보고 그렇게 쓸쓸히 가버린 친구 남편이 더 더욱 측은하고 가슴이 아퍼서 손수건 적시며 울었다.
지금 어느 하늘 어느곳에 노곤한 이승의 삶을 덮고 저승에서 계실까?
경원이 아빠~~
처음 당신을 만나던 날은 2월 바람이 차던 날이었지요~
지금은 꽃도 피고 새도 우는 고운 봄 5월입니다.
부디~ 이제는 그곳에서 평화의 안식을 누리시고 그곳에서는 술과 절대 벗하여 그러지 마세요~
어제 경원이 아빠에게 오열하면서 경원이 엄마는 술한잔 따르며 좋아하는것 더 먹고 가라고 따르더이다.
그술이 마지막 잔이 되고 이제는 정말 하늘 나라에서 좋은 곳에 머믈기를 기도합니다.
안녕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