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죽만 먹고 온종일 밖에서 힘이들던 그이.
속이 아파 죽겠으니 퇴근하면서 약을 챙겨 오란다.
전화에 대고 아픔을 표현하는 그이가 눈에 선해서
위장약들을 가방에 챙겨 넣으면서
작은 웃음을 웃는다.
나도 온종일 같혀 있어 힘들었는데...
입으로 반은 아픈 그이.
내가 옆에 없으니 어찌하고 있으려나!
어제, 일요일 저녁,
다른 날보다 좀 이르게 샷다를 내렸다.
아프다는 전화라도 핑계삼아야 편안한 마음이 되는
나는 별수 없는 장사꾼의 욕심을 스스로 달랜다.
유난스레 깜깜한 시골동네의 밤.
네모난 불빛이 몇군데서 사람의 기척을 알리고
저만치씩 떨어져 있는 가로등 둘이서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구십도의 커브길을 돌면서 보이는 뿌연 빛 두개가
산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올라갈수록 안에서 흐르는 불빛이, 넓은 네모의 선을
선명하게 그어 주며, 안에 있는 물체를 확인시키고 있다.
차를 입구 풀밭에 세워놓고 어둠을 더듬거리며
질척질척 걷다가, 돌위에 덜렁 올라 앉는 발때문에,
서너발짝을 한꺼번에, 머리높이를 무릎에 맞추고 걸어버렸다.
큰일날뻔 했지.
넉넉히 와준 비 덕분에,
바윗돌 위를 지나며 흘러 내리는 물소리.
황톳빛 물로 가득 채워진 연못에서
시끄럽게 합창을 해대는 개구리.
모두들 잠자리에 들려 하는시간.
뒷산에서 내려 온듯한,
깜깜한 아카시아 향내 맡으며
한참이나 서서 음악소리 듣고 있는 나는,
까만밤에 혼자 집 지키고 서있는,
앞집 화가 아저씨네 장승이랑 잠깐동안 똑 같다.
그이가 하루동안 만지작거린 시멘트 조각들이,
"또각~ 또각, 또각 또~각"
내 발자국 소리를 바꾸어 밤공기에 섞으면서,
그이의 땀방울을 흡수해버린 채 로
가지런히 줄서서 누워있다.
전날 보다,
내가 벌린 팔길이의 두배 만큼쯤, 새 길이 늘어나 있다.
보폭(步幅)을 좁혀서,
얼마 되지 않는 그이가 만든 새 길을 한참 걸어 오르며,
서툰 그이의 손놀림과 모습을 생각한다.
내가 시켜서 억지로 하라면 어쨌을까?
온종일 가게에서 일어난 일을
나는 다시 재생시키며,
재미를 섞어 그이에게 들려준다.
손바닥을 명치끝에 대고 연신 돌려대면서,
햇볕에 반쯤 익힌듯한 얼굴은 오만상을 그려 내고 앉아서
입으로 연신 나오던 그이의 엄살소리(내가 보기엔)가
점점 줄더니 어느새 내 말소리만 남아있다.
"자기, 덜 아파요?"
"응? 응~! 따따부따에 정신이 없어서 아픈걸 잊어 버렸어."
"것봐요! 자긴, 나 없으면 밧데리가 방전 되어 버려요."
외딴 불빛 속에서 나오는 펑퍼짐한 웃음소리에
합창하던 개구리들이 놀라며,
잠깐 동안 부르던 노랠 멈추고,
우리 웃음소릴 듣고 있었다.
오늘, 월요일아침.
냉동실에 넣어둔 잣을 갈아 죽을 끓이면서
어제 남은 밥에 김칫국 데워 말아먹고 방문을 여니
그이 벌써 깨어 있다.
마무림 못한 일거리들이 아침잠에 약한 그이를
일찌감치 깨워 놓으니 마지못해 깨어서
가슴으로 벼겔 벤체로 아쉬워 하고 있더니만,
마지못해 일어난다.
"나, 가게 가요~!"
나서는 뒤꼬리를 따라나서는 그이,
아침일이 는단다.
이제야 그걸 알았나보다.
새벽일이 느는것을...
창문을 조금 열어 놓고 달리는 아침.
상큼한 바람이 물기 젖은 머리를 날려댄다.
하루종일 같혀 지낼 생각을 하니
미리 답답해진 마음은,
내려진 창을 더 내리면서
가속기 누른발에 더 힘을 보태고 있다.
초여름이 저만치,
나를 쫓아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