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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코알라 살처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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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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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생각나는날.


BY 雪里 2002-05-08

아직 내려쏟을 비를 덜 내린건지
찌부둥한 하늘이 우거지 상이다.

어릴적 친정 엄마는 이런날이면 하늘을 보고
"저녁굶은 시에미 낯짝 같다"고 했었다.

지금 우리 시어머니.
며느리 늦게 들어가면 저녁 해놓고 기다리시다가,
때놓친 며느리 안스러워 이반찬 저반찬 앞으로 밀어 주시며
늘 하시는말씀.
"밥이 보약여, 분(粉)이구."
"너는 창세기가 쥐창세긴가벼, 그렇게 먹고 사는거 보면."

흐린 하늘탓인지, 이름있는 날 탓인지,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뒤숭숭한 잡념이 머리만 뒤 흔들어서,
머리를 움직일때마다 골이
틀에서 빠져나온 호도과자처럼,
제멋대로 돌아 다니는것 같다,

의자에 깊숙히 등 밀어 댄채,
눈으로만 훑고 있던 월간지를 접는다.
빛깔 좋은 붕어 한마리가 입에 바늘이 매달린채
처량한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낚시 가고 싶다.
남들에게 잘 알려지지않은 조그만 소류지를 찾아
조용하게 대 드리우고 앉아 있고 싶다.
환상적인 찌 놀음이 한번만이라도 있어서
논 서마지기 하고도 못 바꾼다는 그 손맛을
느껴 볼 수 있다면 더 뭘 바랄까 !

창밖을 지나는 사람들을
창틀에 끼워 놓고 보고 있으니
아주 어릴적,
흙벽에 걸린 커다란 광목보자기앞에서
가마니 깔고 앉아 이슬 맞으며
군인아저씨들이 돌려주던 영화를 보는것 같다.

반짝이는 가는선들이 얼굴의 반을 접어 버려도
끊어진 필름을 잇느라 한참을 기다려도,
동네사람 모두가 김부자집 넓은 마당에 모여
까만 하늘을 이고 앉아서 즐거웠던 시절.

분주한 발걸음의 아저씨,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잰 걸음만치 못 걷는 할머니.
목발을 옮기는것 조차 힘이 들어뵈는
앞병원에서 나온듯한 환자복 아줌마.

모두들 오늘의 주인공이되어,
한켠 가슴에 꽃송이 하나씩을 달고 간다.

온 몸과 마음 다 주고,
남은건 여기저기 고통만 밖혔는데도
꽃한송이로 모든걸 다 보상받고서,
오늘하루
내자식이 제일 이라며 가끔씩 내려보는 꽃송이위에
부모의 사랑이 얹히고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내가 어른들께 내민 봉투.
"맛있는거 사 잡수세요."
건네는 손은 적은 액수에 죄스러운데,
장사도 안되는데 뭐하러 주느냐며 손 내둘르시는 두분에게
"제 서운 면하려구요." 하고 나왔다.

김치 담은거 한통들고 과일좀사고,
얇은 봉투 곁들여서 들렀더니 안계셨던 친정엄마.
어제 저녁나절에 전화로, 다녀 갔느냐며
목이 메신다.

딸도 자식이거늘, 아들 없어 딸 옆에 와 계신게
늘 가슴아파 하시는걸 보며 멋없는 딸은,
또 한마디로 엄마 가슴을 훑는다.
"속 썩히는 아들보단 없는게 나으니, 제발 엄마 훌쩍거리지마."

이렇게 하는게 효도의 전부는 아닌걸 알지만
그냥 지나치긴 서운한 날 오늘, 어버이날.

젊은 엄마가 카네이션 꽃송이를 들고 지나간다.

애들이 달아주고간걸 예전의 나처럼 멋적어서
떼어 들고 다니나보다.

전에는 달고 다니지도 않고
물컵에 꽂아 버렸던 꽃송이를,
지금은 모두 떨어져 있는 아들들의 전화로 받고서,

아들눈 올려보며,
땀냄새섞인 아들 냄새 맡으면서,
그애들이 달아주던 카네이션 한송이가
지금,몹시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