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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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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보내기


BY 지란지교 2001-04-16

지난 토요일,
시아버님 기일이 돌아와서 우리 네 식구가 시댁으로 총 출동했다.
편하게 가려면야, 비행기로 가는 편이 시간도 절약하고,
몸도 편하고, 비용도 그게그거인데, 남편은 굳이 우리차로 내려가길
좋아한다.

가는 길에 오롯이 나타나는 봄의 정령들을 만나고 싶어서 일거다.
나역시 차창밖으로 스치는 봄들을 보고 싶어 굳이 비행기로 가자고
고집하지 않는다.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 작은 아들녀석에게 매실달인 매실엑기스를
따뜻한 물에 타서 먹이고, 아쉬운대로 비상약을 챙겨 차에 올랐다.
큰아들녀석은 중간고사가 얼마 안남아서 공부해야겠다고 말을
건네는데, 아서라, 이것도 공부다..하고 같이 데리고 나섰다.
군말 없이 따라나서서는,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꽃들의 난무에
같이 '아~! 아~! 아~! 죽인다~~'하며 소릴 지른다...
따라나서길 잘했다는 표정이다.

시댁 바로 옆은 단풍으로 유명한 '백양사'인데도,
우린 항상 시간상 여유가 없어 한번도 백양사를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냥 표지판에만 잠깐 일별하고 만다.
너무 아름다운 '장성호'를 끼고 도는 도로도 우릴 감탄시킨다.
산에는 산벚꽃나무들이 꽃을 활짝 피웠는지, 멀리서 보면 군데 군데
희끗 희끗하게 보인다.

아름다운 주변광경이 펼쳐지면 속도를 늦춰가며, 되도록 천천히
밖의 경치를 감상하며 지난다.
서로가 직장에 매달려 사실 남들이 일부러 시간내서 다니는
꽃구경의 대열에 우린 이것으로 만족하자는 뜻이다.

밤늦게 도착한 시댁에는 이미 다 도착하셨고, 막내인 우리가
젤 늦게 들어섰다. 반갑게 맞이해주는 아주버님과, 형님들, 조카들..
이미 혼자서 미리 다 준비해 놓으신 큰 형님의 제수음식을 상에
올리며 제사를 지내고 둘러앉아 그간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밤늦도록 얘기꽃을 피웠다.

나름대로 남편에게는 칭찬받고 감탄(?)받는 음식솜씨지만,
큰형님앞에서 명함도 못내밀 솜씨인지라 난 그저 설겆이통을
꿰차고 앉아 끝도 없이 나오는 설겆이에 몰두한다.
그래도 피곤하지 않으니 이상하다.

일요일 오전,
아버님, 어머님이 누워계신 산소로 가는 길도 아름다웠다.
양지바른 곳에 넓게 자리한 묘소에는 이름모를 들꽃들이 피어있고,
햇빛도 잘 드는 것이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자리는 편해보인다.
남편은 내려오는 길 슬쩍, 내 옷을 잡아 당기고는
눈짓으로 좀 쳐져서 걷자고 한다.
아마, 내가 평소에 외치던 '논두렁, 밭두렁 걷기'를 대신하자는
눈치인것 같다.
형님들을 앞세우고 좀 떨어져서 둘이 손을 가만히 잡고 내려오는
길에, 이름 모를 아주 작은 들풀같은 꽃도 들여다 보고,
가지에 하얀 밥풀같은 꽃만 잔뜩 핀 꽃도 꺾어준다.
아이들도 합세를 한다.

밤늦게 도착한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여니 어느새 형님이 챙겨넣으셨는지 올망 졸망한 보따리 가짓수도 참 많이도 넣어두셨다.
한가지라도 혹 상해서 먹지 못하고 버릴까봐, 좀 더 두고 먹어도
될것은 한끼분량으로 나누어서 냉동실에 넣고, 빨리 먹어야
할 것은 며칠동안 우리 식탁에 오르리라..
맛있다며 한 두잔 먹은 석류주도 다른 형님들 모르게 내 가방속에
넣어주셨다. 많이 남지 않아서 모두 못준다고 하시며...

같은 며느리인데도 (며느리가 넷이다) 항상 큰 형님만
제사다, 명절음식준비다로 바쁘신것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항상
죄송함이 남아있다.

봄이 봄답게 진행되고 있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잠깐 다녀온 시댁 가는 길의 풍경과 사람냄새 물씬한 형님과 아주버님
모습에 행복한 마음이다.
아이들이 이런 광경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사람사는 소박하고 정겨운 모습도 기억했으면 한다.

모든것이 빠르게 변한다고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분명 있을것 같은 생각과 그랬으면 하는 바램이 드는 봄날이다.


지란지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