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회사에서 신체검사를 하다 폐에 이상이 있으니 전문의를 찾아보란 충고에 마침 아는 사람이 폐암 전문가라서 찾아갔다.
들고간 엑스레이와 씨티 필름을 보고서 의사는 간단히 말했다.
"이런 것은 암일 경우가 대부분이지."
자세히 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월요일부터 입원해서 검사를 하고 수술을 하던지, 화학치료를 받던지 하게 입원부터하라구..."
남편과 난 정말 천생연분인가부다.
지난 가을엔 내가 폐수술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남편이 폐수술을 받을 차례라고 하니...
다행이 일찍 발견해서 치료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암이라는 병은 웬지 불길하다.
어쩌면 남편과 헤어질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부터 내 마음을 앗아갔던 사람이다.
결혼해서 살면서 이혼하고 싶었던 순간도 숱하게 많았고, 죽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같이 사는 것이 힘들게 느껴진 순간들도 있었다.
이 사람과 이혼하면 내 삶이 좀 홀가분할 것 같기도 했고, 차라리 내가 죽어서 이 사람과의 힘든 삶을 마감하고 싶기도 했었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 비로소 평안을 찾은 것 같았는데 차례로 수술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수술대에 오르기 전 내 마음은 이랬다.
숱하게 싸우며 살긴 했지만 그래도 남편과 같이 산 세월이 고마웠다.
열 살 적부터 가슴앓이를 했던 사람과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시간들이 힘들었어도 축복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세상을 떠나야 한다고 해도 후회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르다.
남편을 먼저 보내야 할 지도 모른다는 것은 내가 먼저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내가 먼저 떠날 준비는 되어 있었던 듯 한데, 남편을 먼저 떠내 보낼 준비는 전혀 되어 있는 것 같지 않다.
이혼하고 혼자 살겠다고 생각할 때는 혼자서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를 먼저 보내고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엔 정말이지 살아낼 일이 걱정이다.
"내가 널 사랑하는 것을 그렇게도 모르겠냐?"
한 성깔하는 아내가 발길질을 하고 육탄전도 불사하겠다고 덤벼도 나중엔 그렇게 말하던 사람인데...
남편은 폐암이라는데 아파트앞 꽃집에서 파는 미니 카네이션에 관심을 갖는 아내를 섭섭하다 하지 않고 같이 나가서 결국은 조그만 화분 세개를 사 준 사람인데...
유독 잘난 체하는 아내가 난 잘 난 사람이니 내가 하는 것은 잘난 체가 아니고 그저 솔직하게 내 본성을 드러낸 것 뿐이라는 억지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준 사람인데...
이 남자를 먼저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것이 정말 쉽지 않다.
그래도 어쩌랴...
죽고 사는 것은 인간이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으니...
남편에게 웃으며 말할 수 밖에...
죽고 사는 것은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 아니고 주어진 시간 동안 감사하고 기쁘게 사는 것이 우리 일이니 사는 동안이라도 감사하고 즐겁게 살도록하자고...
"여보, 당신에게 보여지는 아내가 철없이 웃더라도 오해는 하지 말아요.
당신과 헤어지는 일을 즐거워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다만 그 것이 당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