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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호스 아줌마의 신문읽기 57 - 서재 결혼 시키기


BY 닭호스 2001-04-07

평론가 남진우와 소설가 신경숙. 결혼 2년 째인 이들 부부는 서재를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의 정신세계가 틀린 데 어떻게 책을 합칠 수 있는가』라는 게 이들의 변입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 대부분의 부부는 처녀총각 시절 소중히 간직해 온 책들을 합치는 「의식」을 갖는 게 보통이지요. 이 때 부부 간에는 한정된 서가의 공간을 놓고 다툼이 일기도 하고, 어느 책을 버릴 것인가를 놓고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한 출판인은 결혼을 하면 책이 훨씬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정작 합치고 보니 같은 책이 많아 상당수를 버려야 했다고 하더군요.

미국 작가 앤 패디먼의 책 「엑스 리브리스(Ex Libris)」에는 그녀와 남편 조지가 결혼 5년 만에 책을 섞게 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서재 결혼시키기」(Marrying Libraries)라는 제목의 이 매혹적인 에세이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조지의 책은 민주적으로 뒤섞여, 모든 것을 포괄하는 「문학」이라는 깃발 아래 연합해 있었다. 내 책들은 국적과 주제에 따라 분할 통치되고 있었다. 결국 나의 「프랑스 정원」식 구도가 그의 「영국 정원」식 구도에 승리를 거두었다. 내 식대로 정리하면 그는 그의 책을 찾을 수 있지만, 그의 식대로 정리하면 나는 내 책을 찾을 수 없다는 근거에서였다. 일 주일 동안 재배치를 하고 나자 책들은 깔끔하게 질서를 갖추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 책을 꺼냈다가 엉뚱한 자리에 꽂아두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다시 무질서가 시작되었다.』

패디먼은 책을 솎아내고 분류하고 타협하고 난 뒤 서로 합치는 과정에서 「진정한 결혼」이 이루어졌음을 고백합니다. 그것은 두 정신의 만남을 상징하는 것이었지요.

최근 나온 「서가에 꽂힌 책」(지호)에는 「서가의 책 정리」라는 제목의 흥미진진한 부록이 붙어 있습니다. 제목대로 이 글은 누구나 한번 쯤은 고민했을 법한 서가 정리법이 무려 25가지나 소개되어 있습니다. 저자 이름, 제목, 주제, 출판사, 책 크기, 색깔, 가격, 새책과 헌책 등 다양한 정리법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책을 읽은 순서에 따라 배열하면 한 사람의 지적 성장의 궤적이 책장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장서가들의 최대 고민인 책 버리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책장 오른쪽 끝에 재미없는 책을 차례로 꽂아뒀다가 봄에 책장을 정리할 때 사형수 감방에 보내거나 즉결 처분하라고 조언합니다. 읽은 책과 안 읽은 책으로 구분할 경우 모든 책을 정해진 순서에 따라 꽂되, 읽은 책은 뒤집어 꽂는 방법도 소개합니다.

Books는 이번 주부터 명사들의 서가와 지역 서점을 찾아가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새 봄, 이 시대 최고 장서가들과 지역의 향기있는 서점 이야기를 들으며 책의 향기에 흠뻑 취해보시면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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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른평 남짓한 남들이 보기엔 콧구멍만한 아파트지만.. 우리 스스로는 대궐같은 집이라 만족하는 이 공간에 두 개의 서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나의 서재는,...
백일이 지나서부터 혼자서 자기 시작한 딸아이의 침실로도 사용되고.. 온갖 잡동사니들이 널부러져 창고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우리집의 문간방 구석에 을씨년스레 두 개의 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나의 남편의 서재는...
컴퓨터와 책상이 놓인 우리 집의 명실상부한 서재라 할 수 있는 그의 공부방에 위치해 있다.

나의 서재에는..

내가 한번도 자세히 숙독한 적은 없지만 한 권 두권씩 모은 미관상 훌륭한 여러 전공 원서들과 요리책, 그리고 한때나마 내가 관심을 두었던 미술사책들, 그리고 달이를 위한 육아책.. 그리고 요즘 내가 관심을 두기 시작한 퀼트책들이 놓여있다.

그리고 남편의 서재에는..

원서로 된 그의 전공책들과 그의 어린날의 동화책들이 몇 권, 그리고 나의 눈총을 받으며 한 두 권씩 어렵사리 모은 컴퓨터 잡지들이 꽃혀있다.

이렇듯...
책들은 그들의 주인의 성격과 관심사를 극명하게 대변해 주는 것들이다...

내가 남편의 손때 묻고 표지 색깔도 칙칙한 전공도서들이 나의 아름다운 책들의 사이사이에 꽃혀 분위기를 망치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처럼 남편도.. 나의 전혀 학구적이지 못한 책들이.. 그의 그 고색창연하고 전문적인 전공도서들의 틈새에 끼어 그의 어떤 전문성에 금을 가게 하는 것을 원치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망설임없이 각각의 서재를 꾸미기에 이르렀다.

언젠가...
우리는 천장이 높고.. 평수도 넓은 아름다운 집을 갖게되면.. 그래서... 천장까지 사방으로 빡빡하게 책장을 붙박이로 짜넣은.. 그리고 천장까지 손이 닿도록 도와주는 사다리 하나를 갖다 구색을 맞춘 서재라는 방을 정식으로 갖게된다면 우리 부부는 서재 결혼시키기라는 작업을 시도할지도 모르겠다.

그 때가 되면...
우리 각자가 모은 책들의 반씩에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의 딸 달이를 키우고.. 우리의 가정을 꾸미고... 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공통된 기호를 가진 죽이 잘 맞고.. 서로에 대한 이해에 게으름이 없는 바람직한 부부로 발전해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남편의 컴퓨터 잡지에 손이 가는날...
그리고 나의 요리잡지를 남편이 보게 되는 그런 날...
이 오기를...

그래서 나의 책들과 그의 책..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우리의 아이들의 책들이 한데 어우러져 우리들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지닐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