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했다.
어린 나이에 홀어머니와 약간 덜 떨어진 형과.
그밑으로 줄줄이 있는 동생들을 책임져야했다.
열심히 뒷바라지해서 키워놓은 동생들은
어른이 되어서 젊은 날을 가장으로서 힘을 뺀 형을 이해못했다.
모두들 자기가 잘나서 잘된줄 알았다.
친척들이 모일때면 우리 아버지는
서운함을 못내 내세우곤 했다.
그런 우리 아버지를 친척들은 싫어했다.
아버지는 서울에 올라와서
사업을 해보겠다며 돈을 해줄때까지 안방에서 버티는
작은 아버지를 엄마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도왔다.
몇번의 실패끝에 성공한 작은 아버지는
자기 혼자 이루어냈노라고 침을 튀기며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그런 동생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아무말없이 바라보곤 하셨다.
점점 할일이 줄어서 능력이 없어진 아버지는
당신의 무능력을 탓하시며
아파도 내색을 안하셨던것같다.
일주일동안을 죽한술 못드시며 아파누워있는 아버지를
단순히 감기라고 생각하며
엄마는 병원에 모시고 가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느날...엄마의 전화에
아무생각없이 병원에 모시고가면서
진작 연락안한 엄마를 탓했다.
엄마는 결혼이후로 계속 시댁눈치보느라 친정식구들 한번
제대로 집에 초청못하는 둘째딸을 걱정했으리라.
그런맘이 들면서도 힘없는 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끊임없이 이혼을 생각했던것같다.
간암 말기....
진단 한달 반만에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계절
4월에 아버지는 우리를 떠나셨다.
아파서 누워계시면서도 침대에서 뛰는 손자를 내버려두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엄마를 잘부탁한다고 하셨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몇년째...
이제 몇년째인가도 달력을 들여다보아야한다.
지금 내 모습은 아버지가 돌아가실때,
그때의 다짐들에 얼마나 다가가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