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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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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 소향 다원에는.


BY 雪里 2002-04-03

"그곳 소향 다원에는"
(The place to So Hyang da won)

좁은 계곡을 따라 여기저기 늘어선 음식점이나 찻집들이
갖은 기교로 지나가는 길손을 부르고 있었다.

일차선의 시멘트 포장길은 행여 누구라도 마주치면
둘중 하나가 다시 되돌아 가주어야 갈 수 있는 그런길.

두대의 차가 편안히 교행 할 수 있는 그런길보다는 항상 조급하게 살던 사람들이 잠깐이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어쩌다는 양보도 여유스럽게 하면서 마음 넓은 사람이 되어 보라는 이 들의 배려 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지나간다.

군데군데 필대로 다 펴버린 목련의 화사함이 하얗다 못해 눈부신데도
마음은 시릴대로 시려서 입에서 나오는 탄성이 무색하다.

일찍 마른가지에 피워대는 하얀꽃의 조급함이나
봄햇살의 설레임조차 감지하지 못하고 늦게서야 틔워내는 푸른잎의 더딘 감정이 평생을 서로 만나지 못하며 살아야 하는 운명으로 만드는것 같아서 나는 언제나 봄이면 목련을 보며 맘이 시려한다.

그토록 우아하고 단아한채로 알맞게 화려한 모습을,
우직하고 포용력있게 넓다란 잎의 싱그러움을,
서로는 한번도 못본채로 살아가는데,
사랑하는 연인끼리인 둘이는 느낌으로만 한줄기라서 행복할까?

가끔은 깨어져나간 시멘트길이 정원수대로 채운 차의 무게를 느끼곤 깜짝 놀랄만큼 들이 받아 댄다.

계곡의 끝즈음에서 그 찻집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흐르는 물을 건너서 서있는 거대한 암벽이 잔뜩 어지러놓은 듯한
옛것들의 영혼을 다스리고 있는 듯이 우람하다.

이렇게 많은 골동품을 모으며 여러 곳을 헤맸을 주인의 다리품이 생각나고 앞질러 생각하는 능력을 돈으로 연결 시키기도하며 부러움이 되어 가슴에 와 닿는데 눈은 커다란 한마리의 말에 멈춘다.

임금님 묘지 앞에나 서 있었던 성 싶은, 돌로 깎아 만든 커다란 말 한마리가 시간과 역사를 말해주며 슬픈 얼굴로 산속 깊은 곳에서
옛날 화려 했던 추억을 되새김질 하고 있었다.

어찌어찌해서 모두들 이곳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건지 세월을 크게 한걸음으로 옮겨 뛰어 넘어 와서는 모두들 어색한 차림으로 서 있는것 같아 둘러 보는 속이 편치 않았다.

처음엔 커다란 계획으로 많은 돈을 들여서 준비해 놓았음직한 여러 흔적들이 소홀한 관리로 많이 버려져가고 있음에 안타까움이 크게 든다.
"이럴 거 였으면 시작을 안해서 자연이라도 보전 했어야 했어"
마음속 깊숙히에서 혼자 꿍시렁 거리는 나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무계단의 구석 마다에 둥근 기왓장을 두었고 거기엔 "그곳 소향 다원에는"이라고 쓰여서 화살표를 따라가니 거기가 전통 찻집이다.

마시는 차의 이름이 그리 예쁠 수도 있다는데 놀랐다.
< 녹차 신랑을 맞이하면 >< 봄에 띄우는 편지 >< 진달래가 피다 >...

차의 이름에 취해서 또 한참은 다락방 같은 찻집의 분위기에 취해서,
차의 어원을 물으며 주문을 했다.
진달래 꽃잎을 띄워나온 차 <봄에 띄우는 편지 >.

누구에게라도 분홍빛 마음을 전하고 싶은 충동을 순간 느끼며,
진달래 꽃잎을 얼음과 함께 띄운 솔향이 진한 차를,
커다란 창밖에서 바람에 몸통을 다 맡겨놓고 바람과 같이 흔들거리고 있는 소나무와 키높이를 같이하고 마셔 본다.
무념무상의 시간 이다.

우리는 "잠깐동안 차한잔"의 시간으로는 길게 세시간여를 써버리고 있었다.

동학사 입구에 흐드러지게 피어서 보여줄건 다보여 줬다는듯 서 있는 벚꽃을 보며 벚꽃놀이 다니는 사람들의 기분도 느껴보고, 봄바람에 잔뜩 부풀어서 나들이 다니는 사람들의 기분도 다 느껴 본 것 같아서 뜻하지 않은 봄나들이로 우리 모두는 산뜻한 기분이 되어 되돌아 오고 있었다.

"우리 가끔 이런 시간 갖어요."
"갇혀 있는 겨울에 그림 열심히하고 날잡아서 화개장터도 가요."
"같이 못온 사람이 걸리네요."
선생님앞에 매달리는 어린아이가 된 엄마들이 한마디씩하며 바람을 잔뜩 넣어오는 가슴들을 풀어 놓는다.

순간적인 분위기로 벌어진 화실 식구들과의 짧은 봄나들이.

분위기 있는 곳에서 차 한잔 마시자며 선생님 모시고 간곳.

오랫적에 선생님에게서 그림을 배웠다는 분이 마련해 놓은 전통 찻집 이었다.

이런곳에 익숙치 않는 내게 오천원이나 하는 차 한잔의 값이 눈을 튀어 나오게 하는 금액이면서도
그 차값이 오늘은 전혀 비싸다고 느껴지지 않으니
아무래도 오늘은 내가,
분위기에 취하고 봄바람에 흔들려서 정신이 혼미 해 졌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