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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복수의 다른 모습


BY 칵테일 2000-08-14

가슴이 답답해온다......

언제부턴가 아줌마닷컴에 와서 다른 이들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낀다.

특히나 토크 & 토크 코너의 각종 글들을 읽으면, 너무도 심란한 내용이 많아 억울하고 서글픈 일들을 많이 본다.

보쌈당해 어거지로 살고 있는 결혼생활이 아닌데도, 그 남편을 둘러싼 주변사람들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누이, 시동생, 위아래동서......)로 인해 힘들게 사는 이들이 너무 많다.

시집과 친정은 손바닥의 손등과 바닥정도의 차이.
혈혈단신이 아닌 다음에야, 누구나 시누이도 되었다가, 며느리도 되는 데......
자식키워 성가시키면 누구나 시어머니도 되었다가 친정어머니도 되는데.....

그들이 무슨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도 되는 것인지.

상황에 따라 절묘하게 자기 색을 바꿔가며 사는 것이 과연 여자들의 삶이란 말인가.

아마도 그것은 혈연이냐 아니냐의 여부로써 그 행동의 맥을 달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 피가 섞이면 무한정에 가까운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이는 것이고, 남의 피면 이렇게 저렇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이중성을 보이며 사는 방식 같은 것.

나 또한 그 누구 못지않게 우리 시부모에게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그래서 심각하게 남편과의 이혼까지 생각했었다.
정작 남편과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유난스런 시부모의 극성과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내 사촌오빠는 tv에도 가끔 나오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 그러나 정작 사촌동생인 나에게는 그 오빠도 명의가 되지 못했다.
그저 우리 시부모 비위를 거스리지 않기 위해 애를 써줄뿐.
몇 가지 병명을 대며 치료불능의 상태라고......
히스테릭하거나, 피해망상등이 증상이 심한 채로 60세 이상을 넘기면 치료효과는 거의 전무하다는 절망적인 이야기 뿐.

말도 안돼는 걸 이유로 들면서 처음부터 날 반대했던 분들이고, 남편이 나에게 잘해주는 걸 무슨 벌레보듯 하는 분들이셨다.
말로 해서 무얼할까...... 그 지난 시간들, 힘들고 암울하기만 했던 나의 신혼을.

누구보다 행복하고, 희망에 부풀어야 했을 나의 신혼은 그렇게 깡그리 어둠속 터널로 날아가버렸는데......

지금도 가끔은 나혼자의 생각에 잠겨 그때를 떠올리곤 한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길고 힘들고 두렵기만 했던 그 터널을 잘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아무도 내게 힘이 되어줄 이 없었던, 단지 남편만이 나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던 그 시절을 말이다.

지금은......
모든 상황이 역전되어 있다.
난 그들을 용서했는가?
단지 들추지 않는 것이고, 기억에 잠재워놓는 것이다.
어느 순간에도 또 다시 그런 망령이 내게 찾아올 수 있음을 난 절대 잊지 않고 있다.

난......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이 평화라고 생각한다.
남편 또한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하고, 만족해한다.

어제는 시어머님의 생신 모임을 가졌다.
내놓으라하는 중식당에서 최고급 코스요리로 대접해드렸다. 그리고 현금도 두둑하게 봉투에 넣어 카드와 함께 드렸다.
내 남편은 이런 나에게 고맙다고 했고, 시어머님은 현금봉투까지 내밀자 감동했는지 케?揚美╋?"뭐, 이런 걸 다!..." 하며 입을 다물질 못하셨다.

난.....
그저 도리를 했을 뿐이라고 말씀드린다. 진심이다.
그 돈. 물론 내게 적지 않은 돈이지만, 잃어버린 내 자존심을 되찾는 데 충분하고, 상처입은 내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난......
그렇게 그분들께 '복수'한다.
남편은 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지 모르지만, 자기 부모의 부당함을 누구보다 먼저 알고 있는 그이기에 이런 나를 엉뚱하게 이해한다.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라고. 우리 부모님께서 당신을 진짜 딸처럼 생각하게 만들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과연 그럴까.
난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 아니, 아마도 내가 죽어 관뚜껑덮히는 날까지도 난 아무것도 잊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어느 것도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분들을 미워하거나, 싫어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다만...... 내게 한 일들, 내게 한 말들을 죽어도 잊지않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편과의 이별을 꿈꾸었을 만큼 나에게 상처가 된 일들을 내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더.... 더 나이 먹어, 그야말로 옛말하며 모든 것을 추억할 수 있을 때가 되면 모르겠지만.......

넌..... 알아갈수록 참 좋은 아이로구나. 솔직하고, 영리하고, 현명하고...... 애비가 처복이 있나부다.

이제와선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어떤 말이 진심일까.
말도 안되는 일로 나에게 말도 안되는 걸 강요하실 땐 언제셨길래..... 이제와선 저토록 180도 달라지실 수 있을까.

난 시부모에게 아낌없이 돈을 쓴다. 남편 월급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을 시부모에게 쓴다.
물론 내가 머리싸매고 열심히 주식하는 이유도 그것이었고, 그래서 몇년 충분히 신경안써도 될만큼 모아도 놓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오로지 용서라는 이름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난...... 돈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사업실패이후 중학교이후부턴 내리 가난한 생활이 몸에 밴 사람이다.
물질에 대한 욕심없고, 삶에 대한 탐욕이 없는 나다.
내가 가난을 통해 배운 삶의 철학이 있다면, 절제와 근면이다.
일생을 그렇게 살아온 내가 새삼 돈에 욕심을 낼 이유가 없다.
단, 내게 돈이 필요한 상황은 바로 시부모님들 때문이다.
남편의 연봉은 한정되어있고, 그래서 내가 나름의 재테크를 한 것이다.
이런 나를 남편을 그저 고마워만 한다.
남편을 사랑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평화로워 그는 아픈 기억을 다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알까? 난 그 어떤 것도 잊지도 않았으며, 잊혀지지는 더더욱 힘들다는 것을.

어제...... 깔끔하게 생신을 보내고 들어와 너무도 행복하기만 남편이 잠든 뒤, 난 바깥 베란다에 서서 한참을 하늘을 우러렀다. 많은 생각과 함께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시리라. 저 하늘에 계신 내 부모님은 이런 내 심정을 아시리라. 그분들이 계셨다면, 과연 내게 그런 일들이 있기나 했을까마는 홀로 이 척박한 세상 살아내는 이 딸에게 단지 '존재했었다'라는 사실만으로도 힘을 주시는 분들이기에......

난......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