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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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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 (All is not gold that glitters.)


BY scarlet 2000-06-28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중.고등학교 시절에 우리 집에는 <학생 중앙>이라는 잡지가 정기적으로 배달되고 있었다. 오빠들은 만화만 보고 집어던졌지만 나는 꼼꼼하게 다 읽는 편이었다. 특별히 재미있는 놀이도 모르고, 밖에 나가 친구들이랑 놀러 다닐 돈도 없고, 내성적이기까지 한 나에겐 한 달에 한 번 오는 이 잡지가 아주 기다려지는 오락거리라면 오락거리일까......

그 당시 <학생중앙>에서 읽었던 어떤 수기가 생각이 난다. <학생중앙>이니만큼 당연히 이야기의 주인공은 학생이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여고생인데 언젠가부터 버스 안에서 매일 같은 시간에 마주치는 남학생이 있었다. '나'가 버스에 올라타면 '그'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자리잡고 앉아 있었는데 조각같은 그의 옆모습에 반해버린다. 매일 매일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짝사랑에 빠져 버린다......
매일 같은 등교길이 반복되고 그 날도 '나'는 그의 줄리앙 같은 옆모습을 훔쳐보며 가볍게 한숨짓고 있는데......
먼저 내리려고 일어선 그가 갑자기 '나'의 가방에 편지봉투 하나를 쑥 밀어넣고 내리는 거다.
'나'가 공개하는 그 잘생긴 남자의 러브레터는 이렇게 시작한다.

"소녀여... "
내용은 지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보기에도 유치한 내용과 여기 저기 틀린 맞춤법.
그리고 편지 끝머리에 밝힌 '그'의 이름이 기억이 난다. '그'의 이름은 '박달춘'.
그러면서 '나'는 그에 대한 실망스러움과 함께 마지막에 이렇게 적고있다.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

지금 생각하니 수기라는 명목하에 글솜씨좋은 기자나 편집자의 멋진 작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라는 교훈을 이렇게 확실하게 심어준 글은 아직까지 내겐 없었다.

비슷한 뜻을 가진 반대의 우리 말 표현에는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말도 있다.

현란한 제목에 클릭해서 들어와서 내용을 보면 영 실망스러울때.
브랜드라고 큰 맘 먹고 옷을 샀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시장 옷과의 차이점을 못 찾을때.
크고 깨끗한 음식점을 갔는데 맛은 영 아닐때.
베스트셀러라고 떠들어대는 책을 막상 읽어보니 별로일때.
광고 요란한 비디오 마침내 빌려보니 욕 나올때.
뒷모습 근사한 여자 앞에서 보니 반대일때.(하긴 이때는 기분좋더라.)
......

일일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살아가면서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라는 교훈을 알게 모르게 새기게 되는 때가 참 많다. 그래서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말처럼 너무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가지 말자는 생각도 가끔 해 보곤 한다.

내가 좋아하는 내 마음 속의 연인은 존 트라볼타.
남편이 알면 까무라치겠지만 존 트라볼타를 보면서 가끔 그와의 정사씬을 설정할때가 있다.
<학생중앙>의 수기를 떠올려본다.
만약 그와의 잠자리가 너무 실망스러웠다면 영어로 이렇게 중얼거리겠지.
"All is not gold that glit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