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 전이죠.
보통 때 보다 좀 더 오래 서있었는데,
어느 날, 무릎에서 '찌걱'소리가 나더니
다리굽히고 앉거나 오래 서있으면 좀 좋지 않았어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낫겠거니 했거든요?
웬걸? 그렇게 세월이 지났는데 재발하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 마다 시큼시큼 쑤시는 거 있죠?
의료보험증 챙겨들고 삼실 근처의 한의원을 찾았지요.
한약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한의원 대기실엔
50대 아줌마로 부터 70대 할머니 5-6명이 주욱 앉아 기다리고 있었고, 열 댓개의 눈동자는 TV에 모여 있었어요.
'흐미~ 저 할매들 다 치료받고 내 차례될라카마 얼매나 지둘려야 되노? 치료를 받기나 받겠나? 클났네? 우야지?..........
이럴 줄 알았시마 좀 멀어도 아는 한의원 가는 건데....'
그제서야 치과나 한의원에 갔을 땐, 늘 기다렸던 기억이 되살아났지요.
무료한 시간을 죽여볼라고 테이블의 신문을 집어 들었으나
눈은 신문 기사에 가 있으면서도 신경은 온통 시계에 가 있었구요.
마냥 기다리다간 이도저도 안되겠다 싶어
먼저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급행 열차를 타기로 했어요. 안되면 말고.....
"저, 잠시 비는 시간에 나왔거든요. 시간이 바빠서 그러는데......."
조금은 퉁명스럽고 멀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몬생긴 간호사는,
"좀있다 선생님 나오시거든 말씀드려 보께요."하는 거여요.
그 표정이 꼭 '니같은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나라 갱제가 이 모양이고,
남북통일이 안되는 기라. 되도 안한 인간들이 잘못 저질러 놓고 꼴난
지위 앞세워서 면죄부를 받고, 지 급할 때 급행 열차타더라?
다른 사람들은 안 대단하고 니만 대단하냐?
그라고 니만 급하냐? 다들 급하다.
사는 게 안 급한게 어딧노? 다 급하다. 묵고 살라카마...'
그런 말을 속으로 하는 듯한 간호사의 표정을 읽곤,
'에라~ 몰것다. 기다리면서 한약 냄새나 실컷 맡고,
신문이나 보면서 쉬었다 가지 뭐.
내 차례오기 전에 갈 시간되면 걍 가는 기고...'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 편했어요.
(세상 일은 참 이상도 하죠? 안달복달하면 더 안풀리고,
아예 맘 탁 놓고 있으면 뜻밖에 풀려요.)
그 마음이 통했나요?
"한정숙 손님!"
"네에?......."
진료실로 드가라카는 말인 줄 알고 일어서려니,
"좀 있다가 오시라 하면 가세요."하면서
내 챠트를 진료실로 갖고 가는 거예요. 고맙게시리...흐흐~
곧 진료실로 오라는 부름을 받잡고 진료실로 향했죠.
미리와서 기다린 아줌마와 할매들의 눈총으로 뒷꼭지가 땡겼지만...
어디가 불편한지 묻는 한의사에게 통증부위를 설명하고
치료받을 침상으로 향했어요.
침상 입구에 엉덩이를 반쯤까고 허리와 엉덩이 부분에 고슴도치처럼
침을 꽂은 할매의 모습이 엽기적이었는데요.
드가자 마자 커다란 엉덩이가 눈에 띄길래 얼매나 놀랐는지...
11자처럼 주루룩 놓여있는 침상을 구분하는 커텐이 있었으나,
무신 일인지 커텐이 거의 열려 있었어요.
침상마다 거의 반쯤 열린 엉덩이가...헉...
할매들이라서 그렁가요? 쩝...
치료받을 침상에 누워 바지를 걷어올렸지요.
간호사가 벨트같은 무릎 마사지기를 작동시켰는데,
처음에는 모래알을 무릎에 조금 뿌리는 듯 하더니,
다음엔 모래 소나기 쏟아지듯이 무릎을 진동하고
나중엔 무릎 주위를 둥글게 회전까지 했어요.
신통하죠?
'요즘은 역시 기계가 잘 나와!'
20분이 지나, 원적외선을 쬔 상태에서
침을 무릎 주위에 열몇개 놓았는데,
무릎에 고슴도치 한마리가 앉은 듯.
20분 후, 침을 뽑고 찜질 20분 받는 걸로 무릎 치료 끝!
벌써 이런 일로 한의원에 와서 침을 맞는 다는 사실이 슬펐지만
아픈데 어째요? 이런게 심해지면 관절염 아녀요?
창 밖엔 주말이라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가는 인기척과 햇살,
종류 별로 빵빵거리는 차소리,
창 안엔 침상 밖에서 간간히 들리는 TV소리,
침상 머리맡에서 재잘거리는 라디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젊은 새댁의 아이 울음 소리,
그런저런 소음에도 졸음이 소르르 쏟아졌고,
눈을 감으니 귀에서 소음이 멀어지고,
딴 세상에 왔거나 꼭 꿈결같았어요.
치료비를 계산하고,
급행열차를 태워준 간호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깊숙히 하고 한의원을 나왔지요.
오른쪽 다리가 더욱 무거워진 느낌이 들었지만, 통증은 좀 가신 듯 했죠.
약국에 들러 파스를 사붙이곤 약간 절뚝거리면서 삼실로 향했어요!
급행열차를 타고 내린 기분은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하네요.
양심에 좀 찔리기도 하고...
남이 만약 이런 일을 했다면 얼굴 벌겋게 해갖고 방방 뛰었을 꺼예요.
막상 자기 문제가 되면 입이 쑥들어가고...
언제쯤이면 우리나라에서 이런 급행열차가 사라질까요?
언제쯤이면 급행열차를 타려고 마음조차 먹을 수 없는 그런 유리알같은 나라가 될까요?
개나 소나 되도 안한 직위 내세워 급행열차를 탄다면
없는 사람, 못가진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나요?
그렇잖아도 가진 자 만이 살기 좋은 한국 땅인데.....
또 한의원에 치료받으러 온 사람들은 왜 다 여자들인지?
남자들-아저씨들, 할아버지들은 안 아프고,
아줌마 할머니들만 아픈 건지,
저 아줌마 할머니들을 저렇게 만든 사람이 누군지,
괜시리 불쌍하고 억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아푸지 말아야지요.
아푸면 아픈 사람만 손해잖아요.
그쵸? (암...그렇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