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금요일은 아이들 학교 어머니회에서 계룡산 산행을 하게 되었다.
산행도 산행이지만 내 계획은 다른데 있었다.
주말 부부로 사는 남편이 대전에서 근무하는 까닭에 동학사에서 산행을 한다하니까 다른 사람들 등산하는 시간에 등산하지 말고 남편이나 만나서 분위기 있는 까페가서 '밥이나 사달라 해야지' 하는 엉뚱한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동학사에 우리를 내려놓은 버스가 공주 갑사에 가서 대기하고 있겠다 했다.
남편 사무실에 전화해도 현장에 나갔다며 전화 통화도 안되고 연락도 안되는것 이었다.
남편과의 분위기 있는 로맨스를 기대하던 나의 생각들이 불안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애구 안방마님이 분명히 오는줄 알면서 대기도 안하고 있다니...내가 이번 주말에 집에 오면 맛있는거 해주나 봐라..."
이런생각 저런 생각을 짧은 시간에 하다가 다른 엄마들 등산할때 나 혼자 동학사에 남았다가는 남편도 못 만나고 집에 혼자 올라 갈일이 까마득해서 등산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연락이 안되는 남편을 원망하면서...
대전 동학사에서 출발하여 갑사로 가는 등산로를 택하며 친하게 지내는 엄마들 네명과 함께 산을 오르게 되었다.
산행 초반, 빨강 노랑의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단풍색에 우리 아줌마들은 탄성을 지르기에 바빴고 그 탄성도 잠시잠깐...
가파른 등산로를 오르면서 헉헉거리는 숨 소리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동학사에서 남매탑을 거쳐 금잔디 고개를 넘어 갑사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평소에 운동 안 하던 아줌마들에게는 차라리 고행의 길이었다.
평소에 자칭 들꽃이라며 이쁘게 살아간다는 금주는
"난 단풍이 예쁘게 물든 산책길만 걷고 싶다.이렇게 산을 고생하면서 오르는것은 정말 싫다 언니야. 다음에 등산하자면 난 산은 안 오를꺼야, 평탄한 오솔길만 걸어야지..."
이렇게 말 하면서도 기본 체력은 있는지 정말로 열심히 선두에 서서 잘도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번 산행에 참석 안하겠다고 버티던 미선이를 내가 꼬여 계룡산 단풍이 너무 이쁘니 우리 등산하기 싫으면 등산하지 말고 우리 남편 만나서 커피 사달라해서 놀다오자는 내 꼬임에 넘어가서 이번 산행에 참석하게 된 미선이도 죽을 맛 이었나보다.
몇발자욱 못 가서 쉬고 또 쉬기를 여러번...
이마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하고
"아이구 죽겠다. 이게 내 한계야,정말 산은 못 오르겠네..."
미선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죽을 맛 이었다.
선두그룹은 보이진 않고 나와 미선이가 맨 후미그룹이었나보다.
"설마 우리를 떼어놓고 가기야 하겠어? 우리 천천히 걸으면서 단풍이나 실컷 감상하며 가자."
일행들은 다행히 남매탑에서 우리를 한시간이나 넘게 기다려줬고 갑사까지 무사히 내려와서 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었었다.
아직도 여독이 제대로 안 풀린탓인지 종아리 근육살이 당겨서 걸음을 못걸을 지경이 되었다.
평소에 얼마나 운동을 꾸준히 안했으면 이런 현상이 생기나 싶어 반성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중이다.
처녀적 날렵할때는 등산광이었는데 10년만에 이리도 내 모습이 둔하게 변해버릴줄이야...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날렵하게 안 따라주는데는 노력 안 하고 사는 내 모습도 한 몫 하지않나 싶어 이 가을이 다 가기전에 마음이라도 강하게 다져야겠다.
남편을 못 만나고 와서 서운한 마음은 있지만 남편대신 계룡산에 예쁘게 물들었던 단풍들이 내 마음을 다독여주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내 마음도 너무나 고운 가을색으로 예쁘게 물들어 와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행복할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