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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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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갈대 바람에흔들리다


BY roos 2002-03-12


충남의 어느 작은 농촌마을에서 목회일을하시던 외삼촌께서 편지를보내오셨다
어린나이도 아니고하니 그렇게 방황만 하지말고 바람이라도 쏘일겸 외삼촌이계시는 교회에 놀러오라는 말씀이셨다
11월의 끝자락.
난 오랜생각끝에 장항선 열차에올랐다
차창밖으론 그림같은 농촌의 풍경들이 휙휙 지나가고 낯선 Y역에서 열차는 멈췄다
목사님이계시는 조그만교회는 언덕위에 그림처럼 서 있었다
마을로 들어서자 길옆엔 이파리들이 떨어져나간 앙상한가지에 아직도 따지않은 감들이 발갛게 매달려있어 정감어린 농촌의 풍경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게했다

"얼마전부터 우리교회에 젊은 청년이 한사람나오고있다 1시간씩 기차를 타고 멀리서 나오는 사람이란다
그사람 본가에는 농사도 많고 과수원도 크게하고 양돈도 꽤 많이 하신다는구나 농촌에서도 그정도면 부농이지
그런데 그사람이 청소년시절을 나쁜친구들과 어울려서 성실한 생활을 못했다는데 늦게 하나님을 알게되어 지금은 모든 과거는 다잊고 아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있다
앞으로는 신학공부도 할 예정이다
한번 만나보거라"

그사람과 난 세번 만났고 네번째에 결혼을했다
우린 외삼촌교회에서 가족들 몇분만 모시고 조촐한 결혼식을 가졌다
각자 홀로걷던 길을 이제 함께 걷기위해 약속된 두사람.
그러나 모든것은 확신없이 쉽게 사람을 믿어버린 내게 잘못이있다
그는 부농의 아들도 믿음이 돈독한 신앙인도 아니였고 그저 할일없이 세월이나 보내던 서른한살의 노총각일 뿐이였다

결혼생활의 절반은 헐벗고 굶주리고 여기저기 거처를 찾아 헤매는 방랑자같은 생활의연속이였다
그런 비참함속에서도 첫딸이 태어났다
당시에 한달분이면 300원이던 피임약을 제때에 사먹을 수 없어 피임을 하지못한날도 허다했다
곧이어 둘째딸이 태어나고 세째아들이 태어났다
왜 헤어질 수 없었나?
왜 달아나버리지 않았나?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자식을 품은 엄마의 모성은 마음먹은대로 되는것은아니다
산다는것은 생각처럼 그리 쉽고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남편이 싫으면 먼저 자식이 미워진다고 했다던가.
그러나 난 남편이 속상하게 하면할수록 어린새끼들이 애처롭고 너무가여워서 솟구쳐오르는 모성애를 그저 성난 짐승처럼 본능적자세로만 받아들였다
자식들입에 몇끼씩 풀칠도 못해주는 긴박한 상황일 때는 어려운 친정 살림을 잘알면서도 난 몰래 숨어들어가 쌀독을 열었던일도 한두번이 아니다
10여년동안 내게 가장 큰 소원이 있었다면 그것은 남편의 구타도 폭행도 욕설을 피하는것도 아니였다 다만 밥이라도 배불리 먹어보는것 그것이 전부였다
내이성은 마비되었고
내감성은 남루한 옷을 걸친 채 그저 초라하게 앉아서 새끼들만을 보듬는 나약한 짐승의 몰골뿐이였다
글을 쓰고있는 난 아직도 눈물이난다
그처럼 많이 흘려보낸 눈물이 아직도 어딘가엔 남아있었나보다

중동에 건설붐이있었다
난 남편의 이력서를 몰래써서 건설회사로 보냈다
한달후에 연락이왔다
이제는 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에서 남편은 썩 내키지않는 눈치를보이며 사우디로떠났다
그러나 6개월만에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후 또 한번의 연락을 받고 쿠웨이트로 나갔지만 인내심이나 생활력 책임감과는 거리가 먼 그는 6개월을 겨우 버티고 다시 돌아온것이다

난 그제서야 지금껏 잊고 살아온 하나님을 찾아나섰다
이세상이든 저세상이든 만약 하나님이란분이 진정으로 살아있다면
그는 나를 알것이다
그가 나를 만들고 지금껏 나를 살아있게 했을터이니....
10년동안 발길을 뚝 끊었던 교회의문을 두드렸다
난 아주 작고작은 교회를 찾아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것이다

그날도 새벽잠자리에서 눈을떴다
모두가 잠들어있는 시간이었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괴롭히고 있었다
난 잠자리에서 눈을 감은 채 속으로 외쳤다
"하나님 저는 이제 어떻게 합니까?"
그때 내가슴 저 깊은 심연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리고있었다
"모든걸 하나님께 맡겨라"
난 또 외치고있었다
"하나님께 맡기는것은 어떻게 하는것입니까?"
"기도하거라..."

그 순간 내온몸은 폭발할것같은 떨림이왔고 이제껏 맛볼 수 없었던 기쁨과함께 감당하기 어려운 눈물이 비처럼 끊임없이 흘러내리고있었다


----never e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