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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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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집은 잘 간거쥬?


BY 전여사 2001-03-23

어쩐지 일찍 잠이 들었다 싶었는데,

새벽에 눈이 떠졌다. 2시 35분이다.

어디? 좀 다녀와서,

몇 초동안 망설였다.

갈까?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이렇게 외쳤다.

`지금 시간이 몇신데. 그냥 자아~~'

그래. 자야해. 자야만해.

그렇지 않아도 나는 요즘

술 한잔 걸친 사람 모냥 늘 눈이 벌겋다.

그런데 또 다른 내가 외친다.

`그래? 어디잘수있는지 두고 보자!'

------, ~~~~, *&^,%$#@,!!

에잇!

도저히 못 자겠다.

`그럼 그렇지'



`지금쯤은 다들 꿈나라에 있을거야.'

하면서도 혹시나...

`앗! 이상원? 얘?는 왜 잠을 못잘까?'

알고 보니 그곳은 지금 밤이 아닌 가보다.

오늘은 현준이도 일찍 잤나보다.

밤길에 자주 만나다보니

나의 싸부가 되었다.

싸부도 없었다.



지금 우리집 씽크대 위에는

우리집에 있는

모든 그릇이

총 출동되어있다.

모깡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세탁기 주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애들이 아니 우리 깔끔쟁이딸이

"우리 언제 이사가?"한다.

"왜?"

"이사가면 깨끗한 집에서 살 수 있잖아!"

애가 보통이 아니다.

`엄마! 우리 좀 치우고 살자!'하면 될것을 고렇게 얘기한다.

남편 시집살이보단 딸래미 시집살이가 좀 있는 편이다.



생각해보면 왜 고렇게 얘기했는지 알것도 같다.

얼마전까진 애들아빠가 많이 도와 주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아니 애들 낳았을때 빼고

얼마동안 나는 호강했다.

공주? 아니 왕비가 ?獰駭?

설거지는 물론 청소기도 안돌렸다.



얘기는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6년전에 처음 발견? 아니 알게된 혹이 하나 있었다.

통증이나 그로인한 시달림이 거의 없었다.

격월로 여자로서 아픈때? 좀 고생은 했다.

그렇지만 보통때는 말짱했다. 정말 너무 말짱했다.

그래서 그 혹은 신나게 커져갔다.



어느날 문득 침대에 누웠는데

배에 불룩한 것이 만져졌다.

내가 아무리 미모-미리 모아논 살-가 있기로서니

이정도는 아닐텐데...

왼쪽을 만져봤다.

그쪽은 괜찮았다.

아뿔사!

그럼 그 혹이?

그랬다.



그냥 괜찮겠지, 아프지않으니까, 견딜만 하니까,

평생 모르고 살다 죽는 사람도 있다니까 하면서

너무도 무심히 그대로 방치?하고 있던 내자신에게

조금씩 원망이 가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얘기했다.

사색이 되었다.

내일 바로 병원에 가란다.



삼성의료원에 예약을 했다.

6년전 나를 담당했던 의사는 미국에 연수중이란다.

조금 더 걱정이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병원이 폐업한단다.

전화메세지에, 확인전화에, 전보까지.

너무나 친절한? 병원이었다.

그러고도 나는 정신을 못 차렸다.

늘 걱정은 하면서도

어떻게 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솔직히 겁이 났다.

어떤 의사가 보던

`아니 이렇게 클때까지 뭐하고 있었어요!'

야단 맞을건 뻔한 일이었다.

아버지도 그러셨다.



그러다가 나와 같은 수술을 받은 사람을 만나게 ?榮?

수술 받으니 너무 개운하단다.

나보고도 하루빨리 가보란다.



그래서 동네병원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긴 처음 발견한 곳이 바로 내가 가려는 그 동네병원이었다.

말이 동네병원이지

원장은 그런대로 이름이 알려진 여의사였다.

박 금 자



지금 생각하면 좀 미안하다.

아니 많이 미안하다.

수술전날 나는 울면서 수술 못하겠다고 했다.

지난날의 악몽이 되살아나서...



나는 첫째애를 낳을때

나에게도 이런일이 닥칠수 있다는 걸

그때서야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때까지만해도 건강! 하면

살이 좀 남다른거 빼곤

한건강 하는편이었다.

남들다 쉴때에도 나는

스테이쥐?에 몸을 맡긴채

애들이 가자고 할때까지

음악에 몸을 싣곤 했었다.



그런데 노산에는 장사가 없단다.

-그렇다고 영경이, 애플 너무 걱정하진 말기다. 100% 다 그렇진 않을테니-

애기는 나왔는데

태반이 반밖에 나오질 않았단다.

건강에 대한 자신감만 믿고

나는 유명하다는 동네병원에서 애기를 낳았었다.-그당시 부평에 살았다.



원장 선생님은 남편을 불러놓고

그렇지 않아도 겁이 많은 남편에게

최악의 상황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며

큰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때를 회상하면 남편은 아직까지 식은 땀이 난단다.

꽤 오랜 시간의 수술과 회복시간 후

나는 남편과 면회를 할수 있었다.

"전&&씨 보호자분!"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살짝? 잠이들었던 남편은

약간의 침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아~~~예!!!"하며 달려왔다.

나에게는 그런 악몽같은 때가 있었다.



하여튼 그랬다.

다시 박금자 병원으로 돌아와서,

이곳에서도 친절한?의사때문에

사건은 벌어졌다.



수술을 담당할 원장-존칭은 생략하기로 한다-은

회의 중이라고 하고

또 한 의사는 어제 당직이라 일찍 집에 들어갔단다.

그렇다고 수술전 담당의 면담없이

입원하기는 웬지 마음이 좀 그랬다.

간호사에게 의문을 제기하자

지나가던 의사 한명을 불러 세웠다.

이 의사가 그 문제의 의사다.

사실 남편도 원인제공을 하긴했지만.



남편은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하면서

병원측에서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때부터 문제의 의사강의?는 시작되었다.



이렇게저렇게 했는데 이러이러 할 경우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꽤 길었다.

-세헌이, 혜정이, 규철이는 알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상상치도 못했던 공포심이 마구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큰애 낳을때 큰 병원에서 낳았으면 사후처리가 그자리에서 이루어져

수술중 이동하는 번거러움과 간콩알증후군이 필요 없었을 거라는 생각에 미치자

나는 그 자리를 도망치고 싶어졌다.

하지만 꾹참고. 용기를 내어 그 의사에게

나 정도 혹크기의 환자가 자주 있냐고 물었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의사 친구덜!

내 얘기를 자알 듣고

환자를 대할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하는지를

파악해주기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그 의사왈,

그건 환자가 신경 쓸 사안이 아니란다.

내참! @$#%$#

수술전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인 환자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하는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온몸을 저릿저릿하게 하고 있는데

그 친절한?의사 마지막 답변은

나를 완주워니 넉다운 시키기에 충분했다.



울컥 무엇이 치밀어 올라

그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근데 우리는 여기서 한번쯤

역지사지를 생각해 볼 필요는 있겠다. -한자는 모르겠다-

자신의 병원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에 대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환자는 지푸라기만큼의 위로를 잡고 싶은

최악의 약자 아닌가.



그 덕분에 나는 그 다음날 풀린 폐업철회로

삼성의료원에 다시 갈 수 있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나에게 또 다른 수술방법이 기다리고 있었다.



삼성의료원예약일 바로 전날,

우리부부는 지금은 없어진 프로 `메디칼쇼'를 보고 있었다.

골반내막과 관련된 시술을 전부

개복을 하지않고 한다는 설명과 함께 수술 장면도 보여 주었다.



사실 박금자병원-특정 상호를 밝혀서는 안되겠지만 우리끼리니까 봐 주는 걸로 하자-에서는

혹이 크기때문에 가로도 아니고 세로로 개복해야한다고 했었다.

그렇지않아도 남다른 미모?때문에 국민학교 이후로

비키니 수영복이라는 걸 못 입어보고 살았는데...

아뿔사! 하나님!

저는 평생 펴~~~~엉생 비키니를 못 입어보고 죽는 건 가~~~아요?



현재로 돌아와 나는

평생 비키니는 안 입고 살 생각이다. 왜!

흉터때문이 아니고 고노매 미모 때문에.



그리하야 나는 삼성의료원에 가서

어제 본 수술에 대해 얘기했고 -아참! 여기서 우리는 친절한 의사를 만나게 된다. 이번엔 진짜다!-

그 여의사는 조금전 초음파로 내 혹을 들여다 볼때와는 180도 다른 표정으로-안심하는 눈빛이었다-

간호사를 불러 순식간에 어제 TV에 나온 그 병원 이름과 전화번호, 원장 이름까지 상세하고 친절하게,

아주아주 친~절하게 적어주었다.-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것은 혹이 워낙 커서 화면에 다 잡히질 않았었다-



나이도 나보다 한참 아래로 보이는 -그렇다고 무시하는건 아니다-

젊디젊은 게다가 연약해 보이기까지한 그런 여의사였다.

처음 진료실 문을 열고 딱 들어섰을때 나는 생각했다.

금자언니?한테 그냥 할걸.



진료카드도 복사해 가란다.

게다가 이곳에서 왔다고하면 잘 해줄거란다.

뭘 얼마만큼 잘 해준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또 그리하야

나는 그 병원에서

아버지와 남편이 모니터로 내 속을 훤히 들여다 보는 가운데 수술을 치뤘다.

-나도 나중에 다른 사람 수술 장면을 보고나니, 병원내지는 원장의 그런 친절(모니터로 생중계)은

보호자에게, 특히나 내게는 울아버지에게 너무나 잔인한, 가슴찢어지는, 애간장을 녹이는 장면을

보여드렸구나 싶어, 조금은 아니 많은 원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게 작년 11월 25일의 일이다.

우리 친구들 송년모임에서 랄라리룰라 신나고 있을때,

이 몸은 병상에서 다시말해 우리집 침대에서 베드신을 찍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신랑 주부습진 생겨가며

마누라 돌보기에 몸~바쳐서~ 몸바쳐서~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하늘의 기쁜 소식 덕분으로 이 곳을 방문하게 되고

또 바깥 세상에 목마르고, 오가는 이웃들의 정에 굶주려 있던 나로서는

오늘도 이렇게 날밤을 새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딸 현정아!

쪼끔만 기다려줘.

엄마 쪼끔만 더 수영하고 나올게!!

경동구(동창사이트 약자)스포츠센터 엔돌핀수영장에서.



----이글을 나의 사랑 나의 신랑에게 바칩니다.

컴퓨터 앞에서 혼자 웃다가 울다가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줬는데도 아무말 않고,

유치원때 깊게? 사귄 남자친구와 연락이 되어 쪽지보내고, 채팅하고...했는데도,

그냥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나도 그때는 꽤 인기 있었는데..."하면서 바라봐주는,

우리 신랑 참 멋지지 않나여?



----잠시 경고문을 올림다.

삼실에서 이 글 다 읽다가 짤려도 저 책임 안짐다~이.

균배야! 이건 다 못 읽었쥐?



----끝으로 여성 동무덜과 남자 동무덜집에 계신 왕비님덜!

6개월에 한번은 너무하고, 1년에 한번은 병원에 가야함다.

참고적으로다가 혹여 궁금해 하실까봐 말씀드리는 것은,

시방은 아주 기적같이 말짱함다.

스테이쥐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음다.

젊은 오빠의 광란의 밤이 몹시도 기대가 되고 있음다.

젊은 오빠! 나도 쥑여 줄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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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사이트에 가입하고 얼마 지나지않아 쓴 글이다.
나는 그 사이트로 인해 새로운 삶의 눈을 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