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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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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고독한 칼잡이


BY eheng 2002-03-05

누가 나를 뭐라 부르던 상관치 않겠다. 개의치 않겠다.
세상에 겁 날 게 하나 없다.
왜?
난 고독한 칼잽이니까.

난 힘들고, 외롭고, 웬~지 우울한 날엔 <동사서독>을 본다.
거기엔 방외인으로 살아가는 사막의 칼잽이가 있다. 물론 그 칼잽이가 주인공이다. 그는 법의 둘레에서 빗겨 난 사막에서,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된 황량한 곳에서, 그러나 자유로운 곳에서 아무런 연고 없이 청부살해를 하며 살아간다. 그에게 살인이란 아무런 의미도 느낌도 없는 자신의 일 일 뿐이다. 그렇게 그는 철저한 방외인으로서 세상을 등지고 산다...
...기냥 그런 내용의 영화다. 근데 왜 이 영화가 내게 위로가 될까? 알 수 없는 아이러니다.

나도 칼을 뽑았다.
내 인생의 좌우명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자>다.
난 현실세계의 철저한 한 여자로 산다.
건널목 바로 옆에 두고 무단횡단하다가(그것도 아이 손잡고) 교통경찰에게 잡혀서 훈계 10분 듣고 범칙금까지 2만원 물고 사는 소박한 시민으로
한 끼만 밥을 안 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애들 엄마로
시부모 눈치 보느라 밤새도록 허리 두들기며 일하는 며느리로
남편과 투닥거리며 싸우는 악다구니 왈순 아지매로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이젠 칼 뽑아 들고 요리 조리 가르치는 우당탕퉁탕 요리선생으로 사는 철저한 생활인이다.
난 한시도 이 세상의 윤리와 도덕을 잊지 않고, 남의 눈을 의식하여 행동하고, 때로는 그래서 나보다 남들 더 신경쓰다가 제 발등 찍는 어리버리병 환자가 되기도 한다.
내가 주부로서 부엌에서 일하는 시간은 다른 주부들의 두세배고, 직업인으로서 일하는 시간도 하루 10시간 이상이다. 엄연한 근로노동법 위반이다. 하지만 이 법을 어겼다고 잡아가는 자도, 벌금을 무는 자도 없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남들 다 보는 겨울 연가도 못 보고, 남들 다 가는 싸우나에도 못 가고 병든 암탉 졸듯 픽 쓰러져 잔다.

하지만 난 칼을 좋아한다. 칼을 잡으면 머리가 쭈볏하게 서고 큰 숨을 한 번 내쉬면...
캔버스 앞의 빵떡모자 화가처럼
원고지를 앞에 둔 꼴초 작가처럼
퉁퉁 불은 아지메를 앞에 둔 때밀이처럼
두 눈을 반짝인다. 신경이 곤두선다. 이젠부텀 내 세상이다. 어디를 어떻게 요리할까?
내 칼은 작가의 만년필이요,
화가의 붓이요,
때밀이의 땟수건이다.
아니, 쇼트트렉 선수의 스케이트요,
미스코리아의 여왕봉이요(왕관 이던가?)
엿장수의 가위요,
화이트 칼라의 컴퓨터요,
목사님의 성경이요,(스님의 목탁도!)
블루 칼라의 주먹이다...(헥헥... 이 정도면 됐제?)
나는 이때껏 고독한 싸움을 했다. 혼자서 잘 하려고 무진장 애썼다. 밤새워 혼자서 칼 가지고 놀면서 눈물도 흘리고, 때론 손도 베었다.
고독한 칼잽이였던 것이다.
이젠 그 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한다.
비록 이태원의 그 현란한 칼 춤은 못 춰도
이빨로 칼을 부러뜨리는 차력은 못 해도
선무당처럼 작두 위에서 펄펄 춤은 못 춰도
작은 칼 하나로...
파도 송송 썰고
마늘도 콩콩 다지고
두부도 뚜걱뚜걱 자르고
호박도 또박또박 썰고
감자도 착착 채 썰어
구수한 된장찌개 끓이련다.
나도 이젠 유쾌한 칼잽이로 살 수 있음을 보여줄란다.
친구들아.
언제든 따뜻한 밥 한끼 먹고 싶으면 와라. 다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