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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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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의 작은 행복


BY 쟈스민 2002-03-05

작은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
아침부터 화창한 날씨에 기분마저 한껏 밝아져 조금 늦은 아침을 먹으며
오늘은 오후에 출근을 하기로 한다.

아이는 10시에 있는 입학식 시간까지 무척이나 지루하다는 듯 계속 시계만 쳐다본다.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아이는 챙겨둔 옷가지를 모두 입었는지
준비 ... 땅 하고 금방이라도 튕겨져 나갈 기세다.

이번에 아이가 다닐 학교는 새로 신설된 학교이다.

학교 정문과, 우리 아파트 정문이 마주보고 서 있다.

요즘의 학교 건축 양식은 예전의 우리 어렸을 적과는 아주 많이 다름을 느꼈지만,
최근에 지은 건물이어서인지 미술적인 조형미와 현대적 감각이 남달라 보여서
내심 나는 흐믓했다.

그런 깨끗하고 세련된 미관으로 잘 정돈된 학교에
첫발을 내딛는 내 아이의 손을 잡고서
봄바람에 옷깃을 날리며 신나게 걷는 걸음은 정말 기분이 새로왔다.

보통 입학식은 운동장에서 했던 기억이 있으며 큰 아이 때도 그랬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들을 자리에 앉게 하고,
비록 학부모들은 서서 진행되는 입학식이었지만
넓은 강당의 첫 손님이 되는 영광을
우리는 누렸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마치고 애국가 1절을 따라 부르는
병아리 같은 아이들의 작은 몸짓이 곰살맞고 예뻤다.

그 아이들이 애국가를 부르는 동안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 한켠이 찡하며
내 아이가 벌써 커서 학교를 가게 되었다는 것과
긴 시간 동안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할머니댁에서 자란 아이여서였을까?
뭔가 모르게 잘해주지도 못하고 어느새 학교에 보내야 하는가
그런 생각들이 오버랩되면서 나는 잠시 눈시울이 불거졌다.

그래도 다른 아이들보다 키도 크고, 제법 의젓해서 마음이 놓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아이가 이제부턴 좀더 많은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같은 날은 하루쯤 시간을 내어 마음껏 아이와 있어주며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하루를 그리 보내고 싶었는데...
사무실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 서둘러 점심을 먹고 오후의 출근을 서두른다.

마음은 저기 저만치에 가 있고, 몸은 또 그리로 향해야 했던 나는
잠깐동안의 불편함을 느낀다.

사무실에 도착해 보니 직원들이 반가운 눈인사를 한다.

그래...
여기가 바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였지...
책상위에 수북이 쌓여진 서류들... 일할 꺼리...
그리고 아직 켜지지 못한 채 놓여 있었던 컴이 놓여진 자리 ...

정신없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마음속에 순서도를 그려둔 채
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그 일꺼리들을 모두 마치게 되었다.

하루쯤 휴가를 내어 아이와 맘껏 지내 보고자던 내 욕구는 그렇게 접어 두어야 했지만,
역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때 가장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음을 나는 다시금 보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내 아이가 날이 새면 어김없이 학교에 가듯,
나는 그렇게 이 자리로 가야만 편안한 옷을 입고 있는듯 그랬다.

흐린 하늘에 비내리는 아침
나는 또 하루의 책장을 펼치기 위하여
뿌연 시야를 마음의 등불 하나 밝혀 든 채 가야만 하나보다.

낮게 걸어가는 우산속의 자그마한 아이들이 학교에 가듯이 ...
나도 따라 그길을 달려 가야 한다.

지금쯤은 내 아이도 학교에 잘 갔으려나 ...
그런 염려를 마음속에 남겨 두며 ...

저만치서 친구와 나란히 걸어가는 빨간우산, 노란 우산
큰아이와 아이의 친구가 보인다.

부러 클락션을 눌러 대며 잠깐 동안의 인사를 나눌 수 밖에 없는 나는
오늘도
그런 엄마로 산다.

아이들에게는 늘 미안한 맘으로 ...
하지만 내 일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도 철저하고 싶은 직장인으로
나는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한은 힘차게 살아보려 한다.

아이들의 맑간 눈동자와, 봄햇살 닮은 고운 미소가
늘 그날이 그날같은 일상을 살아내는 나에게
아주 커다란 힘을 가져다 준다.

같은 시간대를 살아내는 우리들은
저마다 다른 곳에서 자신에게 부여받은 나름의 하루를 그리
살아내고 있다.

너무도 가까이에 있어서 자주 잊어버리곤 하는
일상속의 작은 행복들은
뿌연 차창밖으로 가늘게 내리는 빗줄기속에도
그렇게 있어 주었다.

흐린 하루도 낮게 가라앉지 않게 살아내는 작은 지혜를
우리 모두는 나눌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