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사망 시 디지털 기록을 어떻게 처리 했으면 좋겠는지 말씀해 주세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78

자전거 타는 아이


BY 분홍강 2002-03-04

"자기야~ 날씨가 넘 따뜻해...꼭 봄날씨 같다.
좀 이따가 연희 데리고 호수 공원에나 다녀오자.."

쓰레기 봉투를 버리러 반팔 차림으로 나갔던 내가
어린아이 마냥 뛰어서 들어 오며 남편에게
큰 소리로 말을 건냅니다.
이렇게 따뜻한 햇살을 모른 척 할 수 없다는 듯이...

얼마전 기상 뉴스에서 들었던 것처럼
올해는 예년에 비해 한 열흘 정도 봄이 일찍 온다더니
그 말을 증명 이라도 하는 듯이 정말 실감이 나는 날이었어요.

늦은 아침겸 점심을 먹고
남편은 청소기를 끌고 다니며 집안을 청소하고
딸 아이도 자기방을 정리 한다며 부산을 떠는 모습이
휴일 아침 우리집에선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그동안 나는 설거지를 마져 마치고
딸아이와 나는 두꺼운 외투를 벗어버리고
한껏 봄 분위기로 옷을 골라 입습니다.

룰루랄라 즐겁게 자전거를 차에 실고
집 근처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주차장 들어가는 길목 부터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고...
겨우 한 자리를 발견한 후 주차를 하고
서둘러 사람들 속으로 우리도 묻혔습니다.

겨우내 움추렸던 날개를 펴는 새들처럼
어디서 그리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그동안 한산 했던 공원엔 한결 얇고 가벼운 옷차림의
사람들로 활기를 띄고 있습니다.

햇살도 겨울에 느꼈던 그 아쉬운 햇살이 아니요,
바람도 겨울에 느꼈던 그 쌀쌀맞은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바람에도 봄 기운을 담았는지
제법 센 바람인데도 그리 춥지만은 않은
훈풍을 실어 온 듯합니다.

햇살 따뜻한 공원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붐비고 또 다른 한켠에선 연을 날리는 사람,
한가하게 벤치에 앉아 정담을 나누는 사람,
책 한권을 끼고 잔디에 누워 있는 사람.

얼마전 까진 공원 한 귀퉁이의 공터에서만
자전거를 타던 딸아이에게 남편은
그 넓은 공원을 한바퀴 돌 것을 제안합니다.
머뭇 머뭇하던 딸애는 의외로 흔쾌히
남편의 제안을 받아 들입니다.

아이와 남편은 한가하게 자전거를 타며 인파속으로
묻히고 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가져온 책 한권을
꺼내 읽습니다.

앤타일러의 '종이시계'
오래전에 읽고 느낌이 좋았던 책 이었죠.

이 책을 처음 구입했을 때는 결혼 전이 었는데
특별히 스토리나 글의 전개 면에서도
그리 흥미를 끄는 면은 별반 없지만
작가의 섬세한 터치가 깊은 인상을 남겼던
책이었기에 다시 꺼내 왔습니다.

아직은 초보 실력인 딸이기에 공원을 돌아
오려면 시간이 솔찮히 걸릴 것입니다.

그 사이 나는 한가롭게 공원을 거닐다가
입구의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 들고 책을 펼칩니다.

봄볕이 아무리 따뜻하다 해도 아직은 이른 삼월이라
오랫동안 벤치에 앉아 있자니
조금씩 옷깃으로 들어 오는 바람에
자꾸만 몸이 움추러 들어 차에 가서 기다리마 하고
봄햇살로 잘 달구어진 따뜻한 차에 올라
라디오 볼륨을 올립니다.

한가로운 오후 햇살이 차창에 비취고
한가로운 라디오에서도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에 남편과 딸아이는
볼이 한껏 상기되어
바람 냄새를 풍기며 차로 돌아 왔습니다.

싱그러운 봄바람 내음~
바알갛게 상기된 앙증맞은 볼~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동자~

처음으로 그 넓은 공원을 자신의 힘으로
완주를 한 딸의 자랑스러움이 말끝에 묻어납니다.

"엄마,나 자전거 타고 공원 끝까지 다 돌았다.
무지~신나고 잼있어... 담엔 엄마도 같이 하자.."

아직은 자전거 타는 실력이 좀 서툴러
보조 바퀴 달린 자전거에 만족하지만
다음 번에는 두발 자전거에 도전하겠다는
딸아이를 보는 내 마음도 같이 설레입니다.

뒷자리에서도 연신 기분이 좋은지
입을 쉬지 않고 조잘조잘 거리는 귀여운 아이를
보고 있자니
어린시절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그 때가
생각이나서 뒷자리에 앉아 있는
딸에게 싱긋 미소를 건냅니다.

집에 돌아 와서도 쉽사리 오늘의 흥분이 가라 앉지
않는지 책가방을 챙기면서도 연신 흥얼거리더니
일기장을 꺼내 듭니다.

아마 오늘 자기가 이룬 놀라운 일을
적을 테지요.

하나씩 그렇게 새로운 삶의 즐거움을 알아 가는
딸에게서 한치씩 커가는 아이를 발견할 때마다
내 마음까지 한껏 부풀어 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