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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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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씩씩하게 잘 살게!


BY 도가도 2002-03-01

아침 출근할 때 교통사고를 냈다는 친구의 멜을 읽고 답장을 거의 마무리해가고 있을 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친정엄마 목소리였다.
그런데, 평상시와 다른 술에 취한 목소리였다.
"엄마, 술한잔 했네."
"시누이,시동생 다 갔냐?"
"대낮부터 왠 술이야?"
"다들 갔냐고?"
"응"
그때 부터 엄마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숨죽인 울음이 아닌 그야말로 대성통곡이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 집안 구석에서 애들 많이 나으면 뭐할까?
조금만 낳아서 잘 길러야지 하고 둘만 낳았더만,
하나는(남동생) 서른이 다 되도록 장가도 안가고,
하나는 지 좋다고, 돈없어도 지 좋은 사람이면 잘 살겠지 싶어 보냈드만, 무심한 남편은 설에도 오지 않고, 너는 그 촌구석에서 찌그러져 살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자식 많이 나아도 잘 되는 놈도 있더만,
우리집은 어찌그리 둘밖에 없는 것이 둘다 내 속을 섞이는 거여? 응?
지 좋다고 해서 별 반대 안했더만,
그 때 내가 끝까지 반대했어야 했는데,
지들 좋으면 그만이지 하고 포기했더만,
오늘날 요모양 요꼴로 살고.
너도 나처럼 살려나보다.
나하고 똑같이 살려나보다."
엄마는 이런 말들을 되뇌이며 서럽게 울어대셨다.


한참을 그렇게 속풀이를 하신 뒤,
"야! 너 거기서 애들 국민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있어.
그때까지도 니 남편이 변하지 않음,
그때는 내가 너 데려오마.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살아봐.
근데, 나 너 데리고 못산다.
이제까지 시집에도 친정에도 이런 일은 없었는디,
시집간 딸련 데리고 나는 못산다.
챙피해서 못산다."
그러시며 또 울어대신다.


"엄마, 나 엄마한테 안가.
나 여기서 살거야.
누가 나를 보고 이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이집 맏며느리를 해내고 살거라고 생각했겠어.
그래도 다 해내고 살았잔어.
어쩌면 나 이렇게 엄마한테서 멀리 시집온 것이 다행인지도 몰라.
엄마 근처로 시집 갔으면, 아직도 엄마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김치하나도 못만들고 살았을거야.
그리고 엄마도 이제 늙었잔어.
그리고 엄마아빠 남아있는 삶도 얼마남지 않았잔어.
이제는 엄마도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살아야지.
언제까지 내 뒤치닥거리 하며 살거야.
엄마아빠 의지하고 살다가 저세상 가버림, 그때 또 나는 누구에게 의지하겠어.
차라리 지금 고생하는게 나아.
초년 고생은 빌려서라도 한다는 말이 어떤 말인지 이제는 알 것 같아.
지금 고생하는 건 더 나은 날이 보장돼 있지만,
늙어서 고생하는 건 회복하기 힘들잖어.
지금 엄마아빠에게 가면, 몸은 편할지 몰라도, 맘은 언제나 바늘방석일거야."


엄마가 솔직히 이혼을 할거냐, 안할거냐 하고 물어오신다.
이혼을 할지 안할지는 지금 결정내릴 수는 없고,
만약 남편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혼을 할 것이라고 했다.
아니,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느냐,안찍느냐가 중요한게 아니고, 이제는 남편으로부터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살고 싶다 했다.
이제는 내가 발전하는 모습만, 아이들이 밝게 자라는 모습만 보고 살고 싶다 했다.
엄마는 딸이 이렇게 말해주어서 엄마가 데려오겠다고 한 말들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하셨다.
그래도 그 힘든 가운데 대학까지 나오게 한 보람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신단다.


사실 나는 독립적인 인간이 못된다.
어려서는 부모에, 결혼해서는 남편에, 지금은 아이들에 의지하고 산다.
다른 이들은 아이들을 책임으로 키운다고도 하지만,
나는 "책임"이란 거창한 말을 쓸 주제가 못된다.
아이들이 나를 키우게 한다.
엄마로써, 어른으로서 자라게 해준다.
그렇게 의지하다 딸들이 나를 서운케 하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은 미리하고 싶지 않다.
지금 내가 하루하루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건 아이들이다.
아직은 직장이 없지만,내가 벌어다 주는 돈과 모성으로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다면 난 더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 자체로 난 내자신을 아주 많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

엄마는 끝으로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정 아빠를 보고 싶어 하면,
그것도 병 생긴다.
니가 데리고 가서 한번씩 보여줘라.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 죽지도 않은, 멀쩡히 살아있는 아빠조차 볼수 없다니..."
"알았어, 엄마. 그리고 이제부터는 엄마에게 아무말도 못하겠네. 엄마가 이리 속상해 하는데..."
"그러면 쓰간? 니가 나 아니면 누구한테 가서 그 답답한 속을 달래겠니? 숨기거나 하지 말아라."
"알았어, 엄마, 나 잘 해나가고 있잔어. 많이 씩씩해졌잔어. 이젠 사람들에 대한 겁도 많이 안나.
요즘엔 니가 뭐 별 것이냐? 그 속을 보면 빈 깡통인 것을..하는 맘이 생겨서 사람들 만나는 것도 이젠 겁 안나.
살아가면서 용기가 생기네. 그래서 남편없이 살아도 내가 긍정적으로 변화해 가는 것이 좋아서 이 생활도 그리 나쁘다고 생각안해."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1시간짜리 통화였다.


엄마가 이렇게 가슴 아파하실 줄이야.
이제 더이상 엄마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되겠다.
그것은 엄마에게 말을 안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자신있게, 당당하게 잘 살아내는 일일 것이다.

엄마, 이 못난 자식을,
개밥의 도토리처럼,
이럴수도 없고, 저럴수도 없이
굴러다녀야 하는 나를
그래도 엄마자식이라고
엄마가 나은 새끼라고
나밖에 그놈을 감쌀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싶어,
또 나를 엄마품으로 들어오게 하려는
우리 엄마,
나는 이제 너무 커버렸잖어.
엄마품에 안기기에는 이제 나도
늙어가고 있잖어.
언제까지 내가 엄마의 쭈글쭈글해져가는
손길을 받고 살거야.
나 이제 잘 살 수 있어.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생겨.
자신감이 생겨.
그러니까 엄마,
날 잘 지켜봐.
잘 살아낼 테니까.

엄마,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