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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91) * 밥상 이야기 *


BY 쟈스민 2002-01-28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 조금만 더 여유롭다면 얼마나 좋을까?

종종걸음으로 몇번이나 시계를 쳐다보며 출근준비를 하다보면
은근히 아침부터 짜증이 날 때가 있다.

뿌리치기 힘든 새벽잠의 달콤한 유혹에서 어서 깨어나야지 하건만
늘 일어나는 시간은 같은 시간인 걸 보면 ...
내 의지력은 거기까지가 한계인가 싶다.

반찬 없는 밥상이지만, 그래도 따뜻한 국과 새로한 밥으로 아침은 먹어야
이런 쌀쌀한 날씨에 덜 추우려니 싶어
아무런 맛도 못 느끼는 아침밥을 그와 함께 먹는다.

나는 그런 아침상을 내어 놓을 수 밖에 없어서
남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인다.

내가 만약 일하러 가는 주부가 아니라면
앞치마 곱게 차려 입고,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가족들에게 먹일 아침을
조금은 느긋한 맘으로 지을 수 있지 않을까?

바쁜 아침에는 늘 나의 출근준비와, 아침준비가 서로 경합을 벌인다.

어떤게 먼저인지 우선순위를 정하여 두지 못한채
나는 괜히 이리 저리 바쁘기만 할 때가 많다.

그 속에 아이들도 한 몫 하는데, 요즘엔 아이들이 시골에 가고 없으니
그래도 한결 여유롭다.

한정된 시간에 여러가지의 일을 해 낸다는 건
어찌보면 상당한 지혜로움과, 기술을 요구하는 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허둥 지둥 차려내는 참으로 어설프기 그지 없는 밥상을 대하고서도
그는 한결같이 참 맛있게 밥을 먹어준다.

내가 차려낸 밥상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아 내 스스로 짜증을 내는 일은 있어도,
그는 늘 "이정도면 훌륭하다"며 더이상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난 또 새벽같이 일어나서 제대로 된 밥상을 차려주지 못하는
내 스스로에게 화가 날 때도 있다.

그가 집에 오면 물건을 여기 저기 늘어 놓아 종종 내가 따라다니게 만들기도 하지만,
식탁위에서의 예절만큼은 참 잘 배우고 자랐나보다 ...
나는 늘 그런 그의 무엇이든 잘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뭔가를 만들어 주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생각만으로 그칠때가 많다.

예전에 어디선가 남편시집살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집안 살림이며, 음식이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런 저런 잔소리를 늘어놓는 남편을 아마 그렇게 비유한 것 같다.

그런면에서 보면 그는 전혀 아내에게 그런 시집살이를 시키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찬밥을 유독 싫어한다.
어떤 형태로든 다시 만들어 따뜻하게 만들어야만 먹을 정도로...

아무리 밥이 남아도 배부르면 절대 더 먹지 않는 반면,
그는 밥이 아깝다고, 더 먹기 일쑤이다.

다른 집은 여자들이 찬밥 먹는다는데, 우린 어째 바뀐것 같다 ...
너털웃음 웃어가며 참 맛있게도 먹는다.

먹는 모습에 따라 복이 온다고 그랬는데 ...
그런면에서보면 그는 복 많이 받고 살아야 하지 싶다.

그렇게 무슨 음식이든 잘 먹는 사람이지만,
떡, 빵, 고구마 등등의
물기 없는 음식은 안 좋아한다는 거다.

나는 일부러 가끔씩 그런 음식들과도 친해지게 만들려고
냉동실의 떡을 꺼내어 김이 모락 모락 나게 쪄서
이쁜 접시에 담아내어 맛있게 먹어 보인다.
그러면 그도 따라서 먹는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음식들도 가리지 않게 되었다.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조금쯤은 알 수 있는 것 같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속도로,
조용한 미소를 띄우며
골고루 맛있게 ... 소담하게 ...
밥을 먹은 이에겐 자꾸만 더 맛있는 걸 건네주고 싶어진다.

그래서 아마 그런 사람은 더 많은 덕이 쌓아지고 그런 거 아닐까?

지나가던 들길에서 처음 보는 이들이 새참을 먹고 있으면
숟가락 하나 들고 걸쳐 앉아 편안하게 밥 한그릇을 먹을 수 있는
그런 붙임성을 그는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그런 털털함이 갓 결혼한 새댁 시절에는 좀 의아했었는데,
이젠 좋아보이는 걸 보니
나도 어느새 그를 닮아가고 있나 보다.

때 되면 무심코 차려 내는 밥상이 아니라
그를 향한 나의 마음을 담아낸 밥상이라면,
아무리 소찬의 소박한 밥상이라도 그에겐 달디단 사랑의 양식이
될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아내라는 자리에서
나 이외의 누군가를 위하여 밥상을 차려내야 하는 자리는
때로 귀찮기도 할 테고, 때론 대충 지나가 버렸으면 하는 바램도
생기게 할 것이다.

그를 향한 내 사랑의 무게가 느껴지는 밥상은
내게도 기분좋은 밥상이 될 것 같다.

맛있게 먹어주는 그의 모습에서 맛있는 행복이 묻어나고 있을테니까...

그래서인지 요즘의 나는 food 채널을 즐겨 본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방법과 조금은 색다른 방법으로 만든 음식으로
생활의 작은 엑센트를 주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

오늘은 무얼 먹지? 하는 고민은 누구나 다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고민이야말로 즐거운 고민일 수 있으니
기꺼이 고민할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닐런지?

지금부터 오늘 저녁엔 무얼 먹지?
행복한 고민을 하며 머리속엔 이런 저런 재료들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