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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타래 (8) - 해넘이


BY oldhouse 2002-01-27

해넘이!
격포 채석강 해넘이를 아시나요?
하루 왼종일 채석강 층층이 쌓아놓은 책장을 넘기던 파도소리 제 풀에 힘이 꺽기고 이제는 잔물결로 돌아누울때
사람들이 바닷새처럼 날아들고 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하지만 돌아갈곳이 있는 난 주저할 시간이 없고 끌어당기는 수평선의 그 팽팽한 힘을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안타까운듯 소리를 지르지만 내귀에 들리는 단 하나의 목소리, 채석강 따개비처럼 달라붙어 앉아 소리만 살아움직이는
"낙지 먹고 가세요. 싸게 드릴께요. 낙지...."
지체할 나의 시간이 짧을수록 그녀의 목소리는 커지고 화끈한 고추장접시만한 그녀의 뜨거운 가슴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집어주는 멍게, 해삼, 낙지가 푸짐할수록 아쉬운 그녀와 기뻐하는 외지인의 상반된 얼굴을 보면서 나를 닮은 두개의 고무통이 비워져가는 그녀의 파장!


해넘이!
전라도 어느 황토길 해넘이를 아시나요?
비린내나는 전대를 두르던 그녀의 허리가 긴 그림자로 뒤따라오고
달아오른 붉은 길이 금세 서늘해진 고갯길,
이젠 그녀의 발자욱소리만이 동행하는 그 길을 잠시 내려다 봅니다.
구부러진 길들이 말없이 멀어지고 저만치 손바닥만한 고갯길이 눈썹에 걸려 옵니다.
아! 아직도 붉은기가 남아있는 저곳까지 내달리면 그녀는 다시 나를 볼수도 있다는 생각일겝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기다릴수가 없습니다.
온힘을 다해 가쁜 숨을 참고참았다가 그녀가 나타날 이때를 기다려 내뿜고있을 뿐이니까요.

그녀는 어둠을 싫어합니다.
아니 그보다 지금처럼 내가 넘어가는 해넘이 시간을 더 싫어하는지도 모릅니다.
가느다란 황토 고갯길, 그녀 눈썹에 걸리는 손바닥만한 그곳엔 이제는 없는 버팀목이 서 있었으니까요.
고갯길 양옆으론 계단식 논다랭이들이 층층 올라서있고 그 고갯길을 꼴딱 넘어선 정수리엔 늘 그녀의 남편이 마중나와 있었다.
하얀 마스크를 쓴 그는 말없이 그녀의 고무통을 받아들고 버섯처럼 옹기종기한 집안으로 사라져갔다.
후두암을 앓고 있는 그는 그렇게 얼마동안이나마 그녀를 위해 할일을 다하다 숨을 거두웠다.
고갯길 정수리에 서서 넘어가는 나를 배경으로 한폭의 정물화처럼 정지되있다가도 둥실둥실 떠올라오는 지어미의 고무통이 눈에띄면 냉큼 받아내리던 그였다.
그래서 그들의 이런 기약없는 시간이 하루이틀사흘 용케도 사계절을 살아 너나없이 마지막 삶을 불태워야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녀는 늘 파장을 서둘러야했다.
기다리고있을 남편을 떠올리며 종종대던 나날.
이미 저물어진 어둡고 차가운 그자리에 서있게 할 수 없어서 서둘렀다.
하지만 이젠 홀로 넘어서야할 그 길을 햇기가 조금이라도 있을때 지나치고 싶은 것이다.
어차피 혼자인 길이라면 조금이라도 온기가 남아있는 그 길을 밟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 시간을 싫어하고 괴로워한다.

해넘이,
누구에게나 생각깊은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오늘도 나는 뜨고 또 저물어간다.
누군가는 혼자서 걸어가며 나를 배웅할것이고 누군가는 어우렁더우렁 사는가싶게 왁자하게 버티고 서서 나를 배웅할것이다.
다만 하루 일상의 페이지를 넘기려는 시간, 나를 배웅하면서 좀더 숙연하고 보람찬 기분으로 다시 한번 더 나를 바라볼수있다면 아름다울텐데... 어디서는 산아래로 어디서는 바다물속으로 내가 진다고들 한다는데... .

하루종일 물에 분 그녀의 굽은 손가락같은 초생달이 떠오른 후에야 서둘러 몸을 숨길수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