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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86) * 나를 위한 여유... *


BY 쟈스민 2002-01-21

언젠가 부터 다리품을 팔지 않고서 무엇인가를 얻는 일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꼭 어떤 물건을 사지 않고서라도 훌훌 돌아다니며 느끼던 아이쇼핑의 즐거움을 뒤로 하고,

이젠 마음만 먹으면 자판 몇개 두드리고, 대금은 카드에서 딸깍 지불되고...

모든게 편한 세상이다.

나처럼 시간이 없는 사람들...

일일이 은행에 가지 않고서도 볼일 척척 보게 되는 참 편한 세상이다.

엊그제 토요일 아이들은 아직도 시골에서 오지 않았고,
남편은 늦은 귀가중이었고, 나 혼자서 보내는 주말이 좀 심심하긴 했어도
만끽하고 픈 시간의 여유로움이었다고나 할까?

그날 늦은 귀가를 마친 남편은 어느새 코를 드르렁 거리며 꿈속 여행을 펼쳤건만,
나는 무슨이유인지 잠이 오질 않아 새벽 2시까지 TV에 빠져 지냈다.

좀 통통한 그녀가 진행하는 프로포즈...
라이브에 강한 몇몇 가수들의 노래가 곁에서 듣고 있는 듯 착각을 느낄정도로 열정적인 무대였다.

시간이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르게 1시간 30여분이 지난 듯 했다.

오늘 오전엔 그날 들었던 노래들을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어
인터넷으로 CD 몇장을 주문한다.

매달마다 월급을 받으면
예전의 우리 어머니들이 밥하실적마다 쌀 한줌씩 덜어내어
어느 항아리에 채워두셨듯이
나는 나를 위하여 CD몇장 사는 일을 즐기게 되었다.

음악을 듣는 일은
그 노래를 부르는 이가 내가 되어 함께 호흡하고 느낄 수가 있어서
참 좋다.

영혼이 맑아지고, 깨끗해질 정도로 세정되어진 내 마음의 조각들을 다시 긁어 모아
새로이 살아낼 수 있어서 ...
그것은 어느새 내 안에 새로운 나를 불러들이게 해 준다.

혼자 있는 시간엔
차 한잔을 마셔도 가장 예쁜 잔에다
최고로 맛있는 차 한잔을 끓여 내고 싶다.

코로 향기를 음미하는 시간,
귀로 아름다운 선율을 들을 수 있는 시간,
혀끝에 맴도는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
내겐 참 소중하다.

늦은 밤까지 잠을 자지 않고서 그토록 무엇인가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 ...
그것이 내겐 또 다른 특별한 즐거움이다.

영화를 보든,
음악을 듣고 있든,
그냥 하릴없이 앉아 있든,
내게 허락된 그 모든 시간들이 내겐 행복이다.

먹어줄 식구들도 없는데 단호박 한덩이를 다듬어
노오란 호박죽을 끓여 보던 일요일 ...

닦고 또 닦아내는 내 사는 공간의 아늑함에서도
난 아주 많은 고마움을 느낄 수가 있다.

겨울을 잊게 해 주는 싱그러운 화초의 연초록 이파리와의 대화가
나를 깨어 있게 해 주고,

샴푸 냄새 솔솔 나는 나를 따라다니는 그 바람이
나로 하여금 신나는 일요일을 맞게 했다.

누구의 아내 ...
누구의 며느리 ...
아이의 엄마로서가 아닌

나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
그런 여유로움이 나를 가장 나 답게도 한다는 사실이 새로운 휴식을
가져다 주곤 한다.

사십을 바라 보는 지금에도
아직껏 20대의 꿈을 다 접지 못하는

나는 아마도 철부지 아낙인가보다.

그 시절에 꿈꾸던 열정적인 무대에 서고 있진 않지만
난 내게 부여된 내 삶의 무대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삶을 펼쳐보이고 싶다.

그네들의 삶속에 가끔씩 다가가 함께 느끼는 행복감을,
나만이 아는 즐거움을 찾아가다 보면

난 어느새 그런 무대위에 서 있는 주인공이
되어 있을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