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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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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15


BY 후리지아 2002-01-17

밤을 새워 내리는 빗소리 덕분에 잠들지 못하고 새벽을 맞았습니다.
마당을 보니, 말끔하게 씻겨져 있었지요.
마음에도 가끔씩 비가 내려 삶의 찌들고 고달픈 일상들이 씻겨지면
좋겠다. 생각을 해본 새벽이였습니다.

어느날 친구가 전화를 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 보라고... 전화로 하는 아르바이트이니 시간에
구애 받을 필요도 없고, 퇴근후에 할 수 있다는 것이였지요.
그리곤 하는 말이 "너 요즘 힘들다며 오후3시부터 9시까지 근무
하는 곳인데 해 볼래!" 합니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해 물어
보았지요. 성인용품을 판매하는 곳이라고, 집도 가까우니 교통비도
들지 않을 것이라 말을 합니다.
전 웃으며 대답을 했지요. 나 그런곳에 가서 일 못해,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이 있으니까 시간도 없고...
친구는 전화번호를 하나 적으라 합니다.
그곳에 전화해서 아이디를 받으라 하더군요.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끝까지 들었지요. 다 듣고보니...
그곳은 전화방이란 곳이 였습니다. 아이디를 받고, 무료전화로
전화를 걸면 방에 앉아 기다리는 남자에게 연결을 해주고, 통화를
한다는 것이였지요. 1분에 100원씩 지급을 한답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전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나 너희들 만나서도 음담패설 못하는 것
알지, 그리고 설사 한다 하더라도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써 난
그런 것 하기 싫구나, 걱정해 주는 것은 고마운데...미안하다."

친구는 대뜸 목소리 톤을 높이더니 "너 힘들다며 아직은 배부르고
등 따습구나, 야! 힘들면 무슨일은 못하니. 너 참 웃긴다."
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가슴이 콩닥거리고 눈물이 나려고 했지요.
그래! 난 지금 가난한 것이구나.
가난하다고, 아무일이나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아닐텐데...
전화를 끊고, 한동안 마음이 심란 했습니다.
아니, 심란한 것이 아니라 더럽다 해야 겠습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도, 계수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면서도,
밥을 하기 위해 쌀을 씻으면서도 더러운 기분이 가시질 않습니다.
친구에게 달려가 한바탕 싸워주고 싶었습니다.
몇일을 마음이 뒤숭숭 하게 보냈지요.

제겐 언덕위의 늘 푸른 소나무 같은 친구가 있습니다.
힘들고, 고단할때 올라가 아무말 없이 그늘에서 쉬다 내려 올 수
있는... 오랫만에 그 친구가 전화를 했더군요.
다른 친구들 안부를 묻고, 작은녀석 입시도 묻고...
전 지난번 친구가 했던 이야기를 했지요.
이 친구는 마구 화를 냅니다. 가만히 듣고만 있었냐고...
마흔이 넘으면 사는 부류가 정해진다더니, 하면서 말입니다.
어느날 다른 친구를 통하여 소식을 듣게 되었지요.
제 이야기를 듣고 제게 알바를 하라고 권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따졌다 합니다.
힘들게 사는 친구에게 꼭 그렇게 말을 했어야 하냐고...
전 두 친구에게 다 미안했습니다.
변변치 못하게 살아 친구들 마음을 불편하게 했으니까요.

그래도 전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을 합니다.
아직 두 친구 모두와 통화를 하지 못했지요. 그 친구들도 제게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또 흐를 것이고 저도,
친구들도 나이를 먹을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지금처럼 마음좁게
굴었던 일들을 옛날 이야기처럼 하게 될지도 모르겠지요.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지금 고생스럽고 고단했던
일들을 지울 수 있을테니까요.

아이들이 2박3일 일정으로 속초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텅빈 좁은 방을 지키면서 이런날이 점점 많아 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속초엔 많은 눈이 내린다는군요.
노래방도 갔었고, 볼링장도 가서 신나게 놀았다고 작은녀석은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듯 재잘 거립니다.
"엄마! 저희들 없다고 슬퍼하시지 마시고 잘 주무세요."
송수화기를 들고, 한참동안 내려 놓지를 못합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어느 때 인가는 모두 어미곁을 떠나 자신들의 삶을 찾아 가게 될
것을 알면서도 지금은 보내기 싫다고 떼를 쓰고 싶습니다.
그래도 보내야 한다면 떠나는 그때 다시 생각을 하겠습니다.

살아도 살아도...세상을 향하여 부끄럽기만 할 것 같은 인생을
생각해 보는 한가로운 밤입니다.
그리고 적막한 밤이기도 합니다. 진흙탕 속에서도 연꽃은 더러워지지
않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처럼 우리들도 세상에 태어 났으니
부패하여 냄새나는 이 생을 아름다운 사람 향기를 날리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산다는 것은...
굴욕스럽고, 견딜 수 없는...억장이 무너지는 일들을 바위처럼
부서지지 않는 견고함으로 살아내는 것은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