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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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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가을 단풍


BY 작은난초 2000-10-23

아침에 눈을 뜨고 밥도 아직안먹었는데 우리신랑 갑자기

`우리 고기구워먹게로 지리산 가자` 한다.

그러면서 두 시누들에게 부지런히 전화를 돌리네.

남자들은 정말 답답. 여행에는 얼마간의 준비가 있어야 하는

지 생각지를 않는다.

두 시누들이야 막내동생이 뭐하자면 반대하는 법이 없으니깐.

고시랑고시랑 잔소리를 해대며 세수하고 얼굴에 그림그리고 두

딸내미들 준비시키고 바쁘다 바빠.

우리집의 붕붕차 무쏘에 올라탔는데 일요일이라 시누네 딸들까

지 가는 바람에 자리가 비좁다.

생각다 못해 뒤짐칸에 담요를 깔았더니 안방이 따로없다.

나설때는 룰루랄라 하며 신났는데 2시간이 지나기 시작하니 애

들도 짜증, 우리도 엉덩이가 아파와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그러다 지리산 자락을 들어서기 시작하니...

이제막 시작하는 단풍들, 주렁주렁 매달려 가지가 휘어지는 감

들, 약간 흐릿한 날씨에 바람은 불지만 무지 상쾌한 공기..

이곳을 보여주기 위해 기사를 자청한 신랑이 갑자기 이뻐진다.

노란색에서 빨간빛으로 막 넘어가는 단풍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달궁지나 주차장에서 숯불에 고기구워먹고 (무지 맛있드만요)

그 아래 계곡을 내려서니 정말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한폭의 그

림이다.

수많은 바위사이를 누비는 맑은 계곡물, 그 주위를 감싸고 있

는 선명한 색깔의 단풍들, 잠시 고여있는 물에 떨어진 나뭇잎

들, 이제는 겨울을 준비하느라 옷을 벗기 시작한 나무들의 수북

한 낙옆들, 잠시 말을 잊고 한참을 서 있었다.

글재주가 없어 이정도밖에 표현을 못하는게 정말 아쉽다.

어쩜 이런자연을 만들수 있는지 신이 존경스러웠으니까.

네살먹은 우리 큰딸, 여름에 그런계곡물에서 수영해본 기억이

있어 바바리를 벗어 나에게 주며 수영한다며 난리다.

기어이 수영을 한다며 울고불고 하는 철없는 딸을 남편이 들쳐메

고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했다.

노고단을 오르는 길은 무지 차가 밀려 기다시피해 올라서니 여러

분들 잘 아시죠? 그 산자락들...

빽빽히 들어찬 그 산림속에 곰 뿐아니라 호랑이라도 살것 같다.

이제막 들기 시작한 단풍도 황홀하고..

아, 오늘 하루 잘놀았다. 하며 집엘오는데 아무래도 차에서 무

슨 냄새가 자꾸난다. 신랑이 확인하더니 밧데리가 타고 있다

나. 석곡이었는데 일요일이라 카센타는 모두 문을 닫았대고

우린 차라도 꽝하며 터질까봐 밖에 나와 모두 덜덜떨고 (저녁

이 다되어 가니까) 아는사람에게 물어보니 광주까지는 끌고 와

도 괜챦을것 같대니까 끌고 오기는 하는데 겁많은 우리신랑이하

석곡에서 광주까지 한시간을 가슴달달 떨며 왔다.

그 덕분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지 피곤했는지 씻지도 않고 골아

떨어진 남편을 정말로 깨워서 씻기고 싶지만 오늘만은 봐주기로

했다. 아무래도 발도 안씻은것 같은데..


좀 힘든 하루였지만 마누라 커피마시고 싶다니까 힘든 장소에서

기어이 커피뽑아 대령하고 저녁이 너무 늦어 밥하기 싫다고 속삭

였더니 `밥은 한군데서 해결합시다. 큰누나집에서 할라?`하고

소리치는 우리 남편이 오늘은 정말 이쁜 하루였다.

머리속에는 아직도 지리산 단풍이 잊혀지질 않는다.

다음주엔 내장산엘 가자고 졸라 봐야지.

거기 단풍도 정말 굉장하거든요.

님들 꼭 한번 구경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