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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족보(가첩)


BY 1song2 2000-10-22


친정아버지는 나와 띠가 같은데, 정확하게 36살이 많으시다.

올해 초에 감기 기운으로 편찮으셔서 걱정이 많이 되었었는데,

다행히 며칠 앓으시곤 털고 일어나셔서 안심이 되었다.

요즘 70노인네이신 아버지를 보면, 염색으로 머리카락이 빠져

엉성엉성한 머리하며, 가끔 눈에 핏발이 서고, 조금만 몸이 힘드

셔도 입술이 부르터고, 눈에 눈물이 괴며, 잘 들리지 않아 장만

한 보청기는, 너무 크게 들리거나 귀가 아파서 오래 하지도 못하

시고, 주름진 얼굴이 더욱 작아보인다.

예전엔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아버지를 싫어하다 못해 증오했었다.

많은 자식들을 낳아서 제대로 키우지도 못할 거면, 뭐하러 많이

낳았냐고 불평했었다.

3대째 외동이신 아버지는 어려서 고아가 되셨고, 12살에 일본

건너가서 20살에 한국에 나오셨다. 결혼을 하자마자 6.25가 터져

서 군대엘 가셨단다.

전쟁터에서 이마에 총알이 스쳤지만, 조상이 돌봐서 무사하셨

다. 6년 복무하곤 제대후, 엄마는 오빠를 시작으로 6남매를 줄줄

이 낳은 것이다.

콩나물 시루에 콩나물 자라듯, 먹고 입고, 자고, 학교에 다니

는 일이 쉽지 않았던 시절! 그렇게 6남매는 치열하게 자랐다.

지금은 어느덧 40대 중반이 된 큰 오빠와 30대가 된 막내까

지...

내 나이 스물얼마이던 어느 가을날, 아버지와 단둘이 아버지의

외가인 성서에 가게 되었다. 작은 선물을 들곤, 버스를 타고 내

려 걸으며 본 작고 초라해보이는 아버지의 어깨!

그 날 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고, 용서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아버지가 달라보였다.

불쌍하고, 애처롭고, 가슴이 미어지게 안타까웠다.

어린 나이에 부모없이 자라야했던 설움과 고통들이 한꺼번에

내 가슴에 몰아닥쳤다.

'아버지가 늙었다!'

'사실 날이 많지 않다!'



저번 달에 아버지 평생의 원이셨던 족보(가첩)을 완성하셨다.

크기와 두께로야 대수겠나마는, 우리 조상의 뿌리를 제대로 찾으

시겠다는 아버지의 굳은 결심이 작은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 작은 가첩하나를 만드는데, 전국을 뛰어다니시며, 10년만에

완성하신 것이다. 내게는 한권을 그냥 주시고(한문을 전공했다

는 이유만으로), 오빠나 아들들에게는 원가라도 건져야하지 않겠

냐며 원가를 받으셨단다.

아버지는 내게 큰 숙제를 남기셨다.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느낄 수 있다. 김씨 성을 가진 남자와 결혼을 해서 비록 호

적엔 지워졌지만, 난 엄연히 韓가이며, 韓가의 피가 흐르고 있

다.



며칠전 책장을 정리하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가첩을 다시 뒤적이

다 보니, 앞장에 편지지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평생의 소원이던 가첩을 10년이란 세월이 걸려 완성하게 되었

다. 이제 내가 할 일을 다 한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이 글을 읽곤 한바탕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삶을 정리하고 갈길을 준비하시는 듯한 아버지!!!


"아부지!!!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이소!!!

이 둘쨋딸은 아직 아부지에게 못해드린 것이 너무나 많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