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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기분, 몸도 나른


BY 얀~ 2002-01-15

봄 기분, 몸도 나른


연거퍼 손님치루고, 제사지내고 사람들 접하다보니, 물론 술에 무리까지 겹쳐 몸이 나른하다. 몸살 감기 기운이다. 운동으로 몸을 다스려 보려고 산책을 나섰다. 무거워진 몸도 문제지만, 나태해지고 단순해지는 머리의 한계상황(限界狀況)이 힘겹다. 일찍 가게문을 걸고 집에 들어서, 늦은 저녁을 먹고 운동화 끈을 매고 나섰다. 밤거리를 걸으며 잡생각에 빠졌다. 산책을 하며 주변 상가를 기웃거렸다. 나한테 맞는 일이 어떤 것인가 궁리했다. 투자보단 빈몸으로 고객을 가지고 연결해서 할 수 있는 걸 찾아봐야 겠다.

10년동안 가게에 있었으니 쉬면서 생각하라면 좋을텐데, 자꾸만 조이는 말들이 짜증난다. 사실 빈 몸일때는 편했다. 일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젠 자꾸만 밀려오는 일들, 떠밀려 온 제사에, 힘들다고 하소연 하는 친척들까지. 웃으며 버티겠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참았는데. 내려다 보며 배척보단 배려하는 맘으로 살겠노라 다짐했는데, 하루만에 상태가 엉망이다. 집안 일만 있으면, 미꾸라지 붙잡으면 미끄러나가듯 핑계만 되고, 남는 것은 냉기뿐이다.

교통사고 후 저기압이면 머리를 가누지 못하도록 힘이든다. 사실 아플때마다 교통사고와 연관시키기 싫었지만, 어쩔도리 없이 무너진다. 산책을 하며 차가운 바람을 맞으니 다소 진정되는 것같다. 돌아오는 길에 밤늦게 운동을 나선 두분을 만났다. 산책나서며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소나무를 보고 왔다고 한다.
-저도 그 소나무가 맘에 들어서 산거예요
-잘했어, 정말
-한바퀴 함께 돌까요?
-그래
-어머, 빗방울이 떨어지네
-아고, 빨리 집에 가야 겠네
-안녕히 가세요, 또뵈요
집까지 달려갔다. 1월 14일 밤 11시를 지났는데, 여름 소나기처럼 비가 쏟아진다. 가뭄때문에 저수량에 대해 방송하더니, 때아닌 겨울비라니. 머리가 뻥뚫린 고속도로를 질수하는 것처럼 상쾌하다. 개운해진 머리 알싸한 소나무 향이 지붕을 타고 내리는 비와 함께 진하게 풍겨온다.

포도주 한잔과 연필 한자루 쥐고 있노라니, 편안해진다. 아파트 지하주차장 앞 가로등이 솔잎을 비추니, 솔잎 끝에 방울 방울 보석처럼 빗방울이 맺혀 반짝이고 있다. 낮에 읽었던 게시판의 글이 생각났다. 솔방울이 눈물방울처럼 뚝뚝 떨어진다는 글이었다.

10년동안 집도 장만했고, 작업실도 만들었는데, 책 한권 노트한권이 없다니 원. 대신 지붕을 두드리는 비소리와 덜컹이며 지나는 기차소리, 작은 연못에 떨어지는 배수구의 굵은 물소리가 산속의 계곡을 연상시키니 위안을 삼는다. 등받이가 큰 의자에 머리까지 기대고 앉아 있자니, 산과 바다가 떠오른다.

다만 몇일 떠나고 싶다. 희망사항만이지 남편의 허락이나 동의를 받지 않았다. 나 혼자만의 설렘으로 가져보는 꿈이다. 여행하고픈 곳 세곳중, 제주도 성산포는 아컴의 hoesu54님이 방하나 내준다해서 포근하고 따뜻한 맘에 알랴뷰를 외치게 한다.

남편이 한겨울에 장대비가 오네라고 말한다. 세차게 두들기는 빗소리가 작아졌다가 과격하며 웅장해진다. 교향곡처럼 들리는 겨울비에 몸을 내맞기고 잠시 자연속에 있자니, 지리산 산사람은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해진다.


때이른 비, 겨울비


저기압으로 갑갑한 머리
떠올리는 건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싶은 욕망
어둠을 타고
한낮의 고통은
솔잎 두들기며 네가 오려는
암시(暗示)였구나
때이른 비, 겨울비

과수원 비탈에 앉아
소나무 우산 삼고
널 친구삼아 귀 열었던
하얀 카라와 검은색 상하 교복
촉촉히 젖어들던 너의 손길 그리운
단발머리 소녀, 오늘도
혼자 답답하니 친구로 온거지
때이른 비, 겨울비

실감 못하는 혼몽
몸이 원하는 대로
수장되어 떠돌고픈, 외로운 나
영혼이라도 씻어
진살한 삶 일구라고
눈물처럼 떨구며 기도하는
때이른 비, 겨울비